"유동성 우려 커질라"…신용등급 방어에 사력 다하는 롯데그룹
입력 2024.11.22 07:00
    롯데지주, 차입부담에 자회사 실적 부진까지…신용등급 주목
    등급 방어 위해 차입 줄이고 자본성 조달하는 등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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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롯데그룹이 연말 신용등급 정기평가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다. '롯데그룹이 많은 차입금 탓에 유동성 위기가 불거질 것'이라는 루머가 확산되면서 그룹의 신용도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당장 시장의 우려와 같은 ‘위기’는 아니라는 평이 중론이지만, 자회사들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높은 차입금에 롯데지주의 부담도 높아지면서 그룹에서도 신용도 방어에 힘을 쓰는 분위기다.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기업들의 장·단기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정기평가를 1년에 두 차례 진행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12월 단기 신용등급(기업어음) 정기평가를 앞두고 있다. 롯데지주를 비롯해,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케미칼, 롯데건설 등 주요 롯데 계열사들의 단기 유동성을 점검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내 신용평가 3사는 상반기에 진행한 장기 신용등급 정기평가에서 롯데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일제히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만일 이번에 단기 신용등급까지 강등된다면 롯데그룹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 

      특히 롯데지주의 차입 부담이 작지 않은 상황이다. 롯데쇼핑, 롯데케미칼 등 자회사들의 빚까지 합산한 부채 규모가 많아 신용등급 하향 압박이 있다. 롯데지주 계열 합산 순차입금은 2021년 18조4000억원에서 2024년 3월 기준 28조2000억원으로 53% 증가했다. 자회사에 대한 투자부담을 보여주는 지표인 이중레버리지비율은 170%로 집계됐다. 지주사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그룹의 양대 축 중 하나인 롯데케미칼의 부진이 뼈아프다는 평가다. 롯데케미칼은 한때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기도 했으나 전방 수요 침체, 중국발 증설 부담 심화로 2년 넘게 부진한 실적을 기록 중이다. 올해 3분기 영업손실 규모는 4136억원으로, 2000억원대를 예상한 시장 전망치를 크게 밑돌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당장 시장에 언급된 소문(?)이 단기적으로는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지만,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이 지속될 경우 그룹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등 차입 규모가 큰 계열사들에 더해 롯데바이오로직스 지원까지 떠안은 롯데지주가 그룹의 약한 고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롯데그룹의 최근 M&A(인수·합병) 성과가 부진한 점도 신용 부담을 키웠다. 1조5000억원을 투자한 LC타이탄은 석유 업황 악화로 매각이 검토되고 있으며, 2조5000억원 규모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졌다. 공격적 M&A의 후폭풍이 그룹 전체의 재무건전성에 영향을 주고 있다. 

      다른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과 M&A로 인한 차입 부담이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등급 전망에 '부정적 꼬리표'가 달린지 꽤 된 만큼 신용등급 하향 압박이 높은 상황이다. 이는 단기 신용등급 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롯데그룹은 신용등급 방어를 위해 차입금 확대를 자제하고 자본성 조달을 늘려왔다. 특히 그룹 신용도의 연결고리인 롯데지주 등급 방어에 공을 들이고 있다. 

      롯데지주는 올해 1월 3000억원 규모의 무보증 사채를 발행한 이후 공모 회사채 발행을 중단했다. 대신 4000억원 규모의 사모 영구채(신종자본증권)를 발행해 자본 확충에 나섰다. 영구채는 만기가 없어 일부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3분기 기준 롯데그룹의 공모 회사채 발행 규모는 3조38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4% 감소했다.

      최근 롯데케미칼이 해외 자회사들 지분을 대상으로 증권사들과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맺은 것도 재무개선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PRS는 진성매각으로 분류돼 해당 자회사들의 부채를 장부에서 제거할 수 있고, 자금조달도 가능한 효과가 있다. 롯데케미칼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1조4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롯데케미칼의 PRS 계약은 리스크를 회사가 부담하는 구조여서 사실상 우발채무라는 시선도 있다. 회사는 우발채무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향후 회계감사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해당 거래를 어떻게 해석할 지가 변수로 꼽힌다. 영구채 역시 신용평가사들은 실질적으로 고금리 부채에 불과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아울러, 롯데그룹이 최근 기업어음(CP)을 통한 자금조달을 늘리고 있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쇼핑은 지난달 30일 2200억원, 롯데지주는 지난 14일 1200억원 규모의 장기 CP를 발행했다. 공모 회사채 발행 시 발생할 미매각 우려와 평판 리스크를 피하기 위함이지만, 만기가 짧은 CP는 장기 회사채보다 차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연말까지 신용평가사들과 약속한 재무지표 수준을 맞추기 위해 여러 조달을 해왔고, 내년에도 조달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며 "롯데그룹의 위치를 생각하면 시장 조달은 무리없겠지만, 근본적으로 현재 롯데그룹 내 '캐시 카우'가 없다는 점이 가장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