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행장 거취 불가피…상업출신 타격 관측도 있지만
손 전 회장 비위 여파로 한일은행 라인 입지 약화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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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조병규 우리은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옅어지고 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우리금융도 섣불리 인사절차를 시작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다만, 한일은행 출신인 손 전 회장의 비위 혐의로 우리금융 내 한일은행 인사들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조 행장이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이, 국정감사 이후 책임론에서 일정부분 벗어난 임종룡 회장이 한일출신 인사들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내부 통제력을 높이려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금융은 지난 22일 정기 이사회를 개최했다. 내년도 사업계획 등 주요 안건이 논의 대상이었다. 자회사대표이사추천위원회(자추위)는 열리지 않았다. 다만 사외이사들이 모두 모인만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조병규 행장의 거취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사외이사들은 조 행장이 불법대출 관련 혐의 등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힘들 수 있다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차기 행장 관련 숏리스트(적격후보자)가 추려지진 않았지만, 일단 조 행장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실제로 자추위는 좀처럼 인사 논의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주요 자회사 대표를 선임하기 위한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가동하긴 했지만, 이후 롱리스트 선정 등의 본격적인 절차가 시작되진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절차의 틀만 마련했을 뿐 실질적인 인선은 진척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검찰이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의 부당대출 의혹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우리금융 이사회는 인사 결정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였다. 22일 구속영장이 신청되면서 이런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평가다. 특히 조 행장이 해당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 데다, 검찰이 최근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우리은행장 사무실, 우리은행 본점 대출 관련 부서 등을 잇따라 압수수색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금융권에서는 조병규 행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피의자로 전환된 것이 결정타였고, 여기에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당시 준법감시인을 지낸 만큼 도덕적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다. 우리은행 내부에서도 조 행장의 입지가 크게 좁아진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사임할지만 남았다는 관측이다.
이제 시장의 이목은 조 행장을 대체할만한 인물이 있는지에 쏠리고 있다.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 간 계파 갈등이 깊은 우리은행에서 상업은행 출신인 조 행장의 실각이 상업은행 인사들의 입지 축소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다만 우리은행 안팎에서는 조 행장의 실각이 상업은행 출신 인사들의 '몰락'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히려 한일은행 출신인 손 전 회장의 비위 혐의로 인해 우리은행 내 반(反)한일 정서가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더 많다.
손 전 회장 재임 시절은 한일은행 라인이 우세했던 때로 평가받는다. 손 전 회장은 상업은행 출신인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과 갈등을 빚은 반면, 한일은행 출신인 이원덕 전 우리은행장은 후임으로 낙점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한일은행 측에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이유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손 전 회장 라인으로 분류되던 한일은행 출신들의 입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며 "그동안 인사에서 소외됐다고 느끼던 상업은행 출신 인사들은 임종룡 회장 체제가 새로운 기회였는데, 더욱 더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임 회장 취임 이후 상업은행 출신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당장 조병규 행장이 상업은행 출신이고, 주요 보직으로 꼽히는 국내영업부문의 김범석 집행부행장, 경영기획부문의 유도현 집행부행장 등이 대표적이다. 한일 출신인 박구진 준법감시인이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그 자리를 상업 출신인 전재화 준법감시인이 임명된 것도 상징적인 대목이다.
우리은행 주요 임원진 중 상업은행 출신이 주요 핵심 보직을 차지하고 있다. 김범석 국내영업부문장, 유도현 경영기획그룹장을 비롯해 송현주 자산관리그룹장, 김건호 자금시장그룹장, 박장근 리스크관리그룹장, 전재화 준법감시인 등이 상업은행 출신으로 알려진다.
우리은행은 "출신보다는 능력에 따른 인사를 하고 있으며 임원 수도 동수"는 입장이지만, 은행 안팎에서는 최고경영자(CEO) 구도에 따라 주요 보직 등에 쏠림이 있다는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조 행장은 손 전 회장 친인척 대출이 있던 당시 준법감시인의 지위에 있었던만큼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단순히 연임 대상에서 제외되는 방법으로는 '책임'을 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며 "임기 한 달 전 후임 CEO를 확정해야 한다는 규정은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일 뿐으로, 현재 우리금융 상황으로 미뤄볼 때 빠른 인사가 어렵다는 건 이해 가능한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