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 빠진 ㈜효성, 효성화학 사업조정 시간 끌다 수혈 부담만 눈덩이
입력 2024.11.25 07:00
    특수가스 통매각 무산에 계열사·PEF에 매각하는 방식 부상
    효성화학 재무개선 시급한 탓…1조 하한선 그어둔 거래 평
    더 좋은 조건에 거래 마칠 기회 많았는데…원점 돌아간 형국
    3500억 수혈한 ㈜효성 포함 그룹 지원 부담은 계속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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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효성화학의 사업 조정 작업이 길어지면서 지주사 ㈜효성을 비롯한 계열사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가격 문제로 특수가스 사업 매각 협상이 한차례 무산되자 또 그룹에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 펼쳐치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합병(M&A)에서 제때 판단을 내리지 못한 탓에 들어올 돈보다 나갈 돈이 많아지는 형국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효성화학 특수가스 사업 매각 주관사인 UBS와 KDB산업은행은 새 인수 후보군과의 협상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특수가스 사업 지분 100%를 인수하려 했던 IMM프라이빗에쿼티·스틱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에 대한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철회된 만큼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소수지분을 매각하는 구조가 다시 부상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신 나머지 지분은 그룹 계열사인 효성티앤씨나 효성중공업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효성화학의 재무 사정을 감안하면 특수가스 사업 100% 지분 매각대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효성화학은 베트남 법인 비나케미칼에서 발생한 부실 문제로 지난 3분기 말 연결기준 부채비율이 약 9780까지 악화했다. 모회사 ㈜효성의 지원 없이는 사실상 자본잠식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효성티앤씨는 이날 효성화학으로부터 특수가스 사업 인수의향질의서를 수령해 검토 중이지만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공시했다. 효성티앤씨는 스판덱스와 같은 화학섬유 제품이 주력이지만 중국 현지에 삼불화질소(NF3) 무역업도 보유하고 있다. 

      통매각이 무산되며 새로운 구조를 짜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매각 작업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룹 차원의 지원 부담 없이 지금보다 좋은 조건에 매각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효성티앤씨 등 계열사를 활용하는 방안은 연초에도 논의됐었다. 당시에도 통매각이냐, 소수지분 투자유치냐를 두고 결정이 너무 늦어진다며 잡음이 많았다"라며 "그 사이 나아지는 듯했던 전방 업황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결국 당초 기대한 것보다 못한 실적을 거뒀다. 몸값 눈높이가 떨어지니 도로 소수지분 구조로 회귀한 것은 물론, 그룹 내부 자금까지 써야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한번 무산된 거래를 다시 추진할 때엔 시장의 검증 기준도 덩달아 올라가는 편이다. PEF에 소수지분을 매각하는 구조에선 회수보장 요건 등 문제로 계약서가 두꺼워지는 경향이 짙다. 이 경우 재무적투자자(FI)에 대한 계약이행 부담 역시 모회사 등 대체로 그룹 내부를 향하게 된다. 

      더군다나 현재 진행 중인 거래는 종전 IMM PE·스틱 컨소시엄보다 후한 조건을 제시할 상대를 찾으려는 연장전에 가깝다. 사실상 효성그룹에서 특수가스 사업 가치를 최소 1조원 안팎으로 그어놓고 치르는 거래라는 평가가 많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최초 입찰 당시 IMM PE·스틱 컨소시엄을 제외한 참여자 전반이 소수지분 거래를 제안하긴 했지만, 어쨌건 지금은 사업 전망도 NF3에 대한 몸값 기준도 그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라며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몸값을 효성그룹 계열사와 함께 절반씩 부담해 줄 상대방을 찾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효성그룹 스스로 사업 조정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효성화학에 대한 시장의 걱정에 비해 그룹이 M&A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안일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로 ㈜효성은 효성화학이 특수가스 매각을 준비하기 시작한 작년 하반기 이후 1년여간 영구채 인수, 유상증자 등 방식으로 3500억원을 수혈했다. 시장 분위기가 좋을 때 특수가스 매각 작업부터 서둘렀다면 지주사의 지원 부담을 줄일 수 있었을 거란 시각이 많다. 

      3500억원은 협상 막바지 IMM PE·스틱 컨소시엄이 제시한 금액과 효성그룹이 희망하는 가격 격차보다 큰 금액이다. 이 기간 효성화학이 재무개선을 위해 병행한 비나케미칼, 필름사업 매각 등 유동화 작업도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효성화학은 사업부 분할·매각 등 유동화 작업 외에도 본업인 화학 사업의 구조조정 역시 수년 내 해결해야 한다.  

      특수가스 매각이 최종 좌초할 경우 실기 논란은 물론 다른 사업 자회사들의 불만도 커질 수 있다. 효성화학은 이번 특수가스 매각 대금이 없으면 산업은행 등에서 마련한 차입금 상환 일정이 틀어지게 된다. 현재도 자력으로 재무개선 작업을 완주하기 힘든데 계속해서 ㈜효성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효성의 수혈 재원은 대부분 효성티앤씨·효성중공업에서 수취한 배당금이다. 

      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지난 수년간 오너 그룹사들이 시장 눈높이와 동떨어진 매각가를 고집하거나, 제때 판단을 내리지 못해 유동성 위험을 자초하는 사례가 늘었다. 자문 업계에서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라며 "효성화학의 이번 특수가스 매각전 역시 자가당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