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자추위, 조만간 최종 은행장 후보 발표할 듯
작년엔 2개월간 3단계 다면평가...올해는 '도로 깜깜이'
깜깜이로 돌아가며 '투서 탓'ㆍ'낙하산 탓' 뒷말만 무성
'불투명한 인사 문화 멈추겠다'는 임종룡 발언 회자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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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취임한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가장 공들인 것 중 하나가 '은행장 승계 프로그램'이었다. 임 회장은 4개월에 가까운 행장 공백을 감내하면서까지 '투명하고 공정한' 은행장 선정 절차를 주문했다. 일선 현장에선 영업력 저하를 우려했지만, 임 회장과 지주 이사회는 '명분'을 앞세웠다.
그해 3월27일, 우리금융은 롱리스트(잠재후보군) 4명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2개월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외부전문가 심층 인터뷰, 내외부 다면평가를 통한 평판조회, 업무역량평가 등 총 3단계를 거쳐 5월25일 상위 성과자 2명을 숏리스트(적격후보군)로 추렸다. 이들을 대상으로 경영계획 프리젠테이션과 심층면접을 거쳐 조병규 현 우리은행장을 선발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금융은 롱리스트ㆍ숏리스트에 포함된 후보군을 실시간 공개하고, 평가 단계 및 항목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공정성과 투명성에 무게를 싣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은행장 선임 후 우리금융은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더욱 고도화하겠다"고 자평했다. 임종룡 회장 역시 은행장 선임 절차가 잘 진행됐다며 흡족함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1년 6개월이 지났다. 호실적에 힘입어 연임 의지를 키우던 조병규 행장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부당대출 혐의에 휘말리며 스스로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금이야말로 '고도화한 은행장 승계 프로그램'을 가동할 시기이지만, '공정과 투명'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우리금융 이사회는 지난 9월 자회사대표이사추천위원회(자추위)를 가동했다. 자추위는 지난달 말 내부 인사로 구성된 6명 안팎의 롱리스트를 간추린 것으로 파악된다. 이달 들어 조 행장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되는 등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자, 급히 회의를 소집해 이르면 이번주, 늦어도 12월초에는 차기 은행장 단독 후보를 선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대외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한 사안은 없다시피하다.
6인으로 구성됐다는 롱리스트조차 알음알음 소문을 통해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우리금융이 자랑하던 '3단계 선정 프로그램' 역시 금융당국 조사 등에 여력이 소진돼 상당부분 생략됐다는 평가가 내부에서도 나온다. 최종후보군인 숏리스트 발표조차 없이 곧바로 단독 후보가 발표될 거란 예상이 제기되며, 순식간에 10년 전 '깜깜이 인사'로 돌아갔다는 비판이 나온다.
은행장 선임 절차가 '깜깜이'로 진행되니, 확인되지 않은 풍문과 비방이 다시금 빈 공간을 파고들고 있다.
일례로 롱리스트를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투서 문화 탓'이라는 해석이 따라붙는다. 지난해 이원덕 전 행장의 사퇴 이후 차기 행장으로 어느 인사가 유력하게 언급될 때마다, 해당 후보자에 대한 비판이 담긴 '투서'가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한때 차기 은행장으로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화재 전 지주 사업지원총괄 사장이 롱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걸 두고 '투서 탓'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며 "지난해 공개했던 롱리스트 4인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오며 이사회에서 앞으로는 명단 공개를 꺼릴거란 시각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차기 행장 자리를 두고 유도현 부행장과 정진환 부행장의 2파전 구도라는 전망이 일각에서 제기되자, 곧바로 해당 인사에 대한 비판이 안팎에서 뒤따르고 있다. '재무를 맡고 있는 유도현 부행장은 보통주자본비율(CET1) 관리 미흡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정진완 부행장은 런던지점 근무 시절 임종룡 회장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 '코드 인사'에 가깝다'는 식이다.
이렇다보니 지난해 은행장 승계 프로그램은 '외풍'을 막기 위한 이례적 선임 절차였을거란 관측도 나온다.
롱리스트에 포함된 한 후보가 정치권 혹은 대통령실의 비호를 받는다는 말이 나왔는데데, 임 회장이 해당 인사를 비토(Vito;거부)하기 위해 일부러 '공정과 투명'을 내세운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우리금융을 조사하는 배경을 여기서 찾기도 한다.
우리금융 입장에선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손태승 리스크'가 불거지기 시작한 건 불과 3개월 전의 일이다. 연임 의지가 크던 조 행장이 갑자기 연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리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지난해 은행장 승계 프로그램 역시 이원덕 당시 행장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인해 시작됐다. '이번엔 상황이 급하니 깜깜이로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핑계가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유다. 새로운 기업문화를 세우겠다며 "불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인사 등 음지 문화를 멈춰야 한다"고 일갈한 건 임종룡 회장 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