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복원 의지 드러낸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 본 무대는 내년부터
입력 2024.11.27 14:08|수정 2024.11.27 14:09
    HBM·파운드리 부진에 기존 사업부장은 모두 경질
    전영현·한진만 모두 설계 전문…사업 직접 챙긴다
    반도체 리더십 재편 마무리 단계…내년부터 본게임
    사업지원 TF 정현호·박학규 체제…재무라인 그대로
    일단은 반도체 먼저…나머지 인적 쇄신은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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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의 이번 인사를 둘러싼 최대 관심사는 반도체(DS) 부문이었다. 수장으로 복귀한 전영현 부회장의 경쟁력 복원 작업에 얼마나 힘이 실리느냐가 핵심이었는데, 사장단 인사에서 반도체를 우선 살리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는 평이다. 

      전 부회장의 리더십에 확실한 힘이 실렸지만 본 무대는 내년부터라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반도체 경쟁력 복원에 수년이 필요한 데다 리더십 논란을 일으킨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부회장과 정현호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장 부회장은 모두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27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2025년 사장단 인사는 전영현 DS부문장 중심 리더십 재편으로 요약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가능성을 일축했던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사장과 분기 조 단위 적자를 내고 있는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이 경질됐다. 각 자리는 전 부회장과 승진한 한진만 사장으로 대체됐다. 

      두 인사는 삼성전자의 D램과 낸드 개발을 두루 거친 메모리 반도체 설계 전문가다. 반도체 산업에서 설계 전문가는 고객과 시장 필요에 따라 적기 최적 솔루션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업계에선 같은 엔지니어 출신이라도 제조공정 개발과 수율을 끌어올리는 공정 전문가와는 다르게 분류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전임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은 공정에 특화한 인사로 통했다. 

      삼성전자 반도체가 다시 고객과 시장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대세로 부상한 HBM이나 파운드리 사업 모두 고객의 주문에 맞춰 생산하는 수주형 산업에 속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최근 부진은 이 같은 점을 경시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많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범용 D램이나 낸드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을 때는 마케팅·영업이나 공정 전문가가 이익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다시 초심으로 가야 할 때"라며 "현장의 목소리가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 전문가들이 전진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전 부회장이 DS부문을 총괄하면서 메모리 경쟁력 복원에 집중할 수 있느냐는 우려도 있었던 만큼 메모리사업부를 대표이사 직할 체제로 전환했다. 사실상 메모리사업부가 부회장급 조직으로 리더십 기반을 갖추게 됐다는 평이다. 전 부회장 스스로도 D램 경쟁력부터 복원해야 한다는 의지가 큰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5월 전 부회장과 함께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긴 김용관 사업지원 TF 부사장은 DS부문 경영전략담당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역시 DS부문에 힘이 실리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김 사장은 해체된 미래전략실 전략1팀 출신으로 전략기획 전문가다. 재계에선 전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삼성전자로 복귀시킨 인사로 통한다. 

      곧 있을 정기 임원인사와 조직 개편안까지 확정되면 전 부회장 중심 반도체 리더십 재편 작업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간 핵심 인재 유출이 이어진 데다 전방 불확실성이 여전해 경쟁력 복원 성과가 드러나기까진 시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많다. 내년부터 인재 확보 및 고객사 네트워크 보강 작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이번 인사에서도 대대적 쇄신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줄곧 투톱 체제의 한 축을 이루며 리더십 논란을 일으킨 한종희 부회장은 계속해서 DX부문장을 맡는다. 대신 신설 품질혁신위원회의 위원장직을 역임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리더십과 경영 역량을 입증한 시니어 사장에 브랜드·소비자경험 혁신 과제를 부여해 중장기 가치 제고에 나서기 위한 선택이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DS부문을 제외한 사업부까지 손을 대기 어려웠을 거란 목소리가 적지 않다. DX부문 내부적으로도 위기감이 상당하지만 당장 한 부회장을 대체할 리더십을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해진다. DS부문의 경우 지난 5월 전 부회장이 복귀하던 시점부터 재편 작업이 이뤄졌다. 반도체에 비해 사업적 중요성이나 주목도가 떨어지는 것도 배경으로 거론된다. 

      재무라인 역시 그대로다. 시선이 집중됐던 사업지원 TF 역시 정현호 부회장이 직을 유지하게 됐다. 박학규 DX부문 경영지원실장 사장은 사업지원TF 담당 사장으로 이동했다. 그룹 내 핵심 재무 인사들이 그대로 건재한 모습인데, 사업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기 위한 선택인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 사법 리스크가 지속되고 있고, 오너일가 상속세 완납까지 아직 시간이 걸리는 만큼 TF 체제에 대한 문제는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라며 "인사를 전후해 박학규 사장이나 최윤호 삼성SDI 사장 등 포스트 TF 체제가 주목을 받았지만 제3의 후계구도 역시 안팎에서 돌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