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에 준감위에 미래기획단, 경영진단실까지…삼성전자 이사회 무용론
입력 2024.12.02 07:00
    취재노트
    사업지원 TF용 회전문 조직일까…안중현 사례도 거론
    최윤호 사장 이력 초점 둔 우려…SDI '유리천장' 사례
    경영진단실, 결국 삼성전자 밖 '제2의 TF' 불과하단 평
    이사회 대신 사업 개입할 창구만 매년 늘어나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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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이 삼성글로벌리서치(전 삼성경제연구소)에 경영진단실을 신설하고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을 신임 경영진단실장으로 임명했다.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와 준법감시위원회, 미래사업기획단에 이어 또 하나의 외부 창구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전일 발표된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사장단 인사를 보며 마련된 기대감이 하루만에 싹 달아난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 스스로 이사회 기능을 희석시키며 역행하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 

      안중현 사장 때처럼 회전문용 신설조직인 걸까

      경영진단실 신설 자체는 기존 사업지원TF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독립적, 객관적으로 그룹 사업을 분석·지원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삼성글로벌리서치가 원래도 관계사 경영 진단과 컨설팅 기능을 해왔던 만큼 이를 사장급 조직으로 키운 것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삼성글로벌리서치는 삼성전자(29.80%)와 삼성SDI(29.60%), 삼성전기(23.80%), 삼성생명보험(14.80%) 등 그룹 계열사들이 지분 전량을 나눠갖고 있다. 

      지분 구조만 보면 삼성글로벌리서치가 그룹 계열 사업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기 어려운 위치다. 2년 전 삼성그룹 인수합병(M&A) 키맨으로 통하던 안중현 당시 사업지원TF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삼성글로벌리서치 미래산업연구본부장으로 이동했을 때에도 영전이냐, 마지막 예우냐 말이 많았다. 최윤호 사장 역시 올해 삼성전자로 복귀를 희망하다 미끄러진 탓에 잠시 옮겨간 것일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안중현 사장이 삼성글로벌리서치로 간 뒤로 뚜렷한 활동 성과 없이 2년 만에 슬쩍 삼성전자로 돌아온 것을 보면 그냥 회전문용 자리 이동일 수도 있다"라며 "이미 삼성전자는 전방위 외부 컨설팅을 받고 있는데, 그룹 내에 경영진단실을 신설해야 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최윤호 사장의 이력을 감안하면 당시와는 다르다는 목소리가 많다. 단순히 최 사장이 과거 미래전략실, 사업지원TF 담당임원을 거친 재무통이라는 점을 우려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사업지원TF 출신 인사의 그룹 내 사업관리 방식 문제

      걱정은 최윤호 사장이 삼성전자에서 삼성SDI로 이동했다가, 이번에 신임 경영진단실로 옮겨오기까지의 배경에서 비롯된다. 

      2021년 10월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북미 배터리셀 합작법인(JV) 설립을 논의하다가 LG에너지솔루션에 선수를 빼앗긴 적이 있다. 원래 배터리 업계에서 스텔란티스의 북미 물량은 삼성SDI 몫으로 통했다. 스텔란티스가 삼성SDI의 세 번째로 큰 고객이기도 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과거 피아트크라이슬러(FCA)의 사외이사를 지냈던 덕에 관계가 두터웠기 때문이다. 스텔란티스는 FCA와 푸조시트로엥(PAS)가 합병해 출범한 전기차 기업이다. 

      LG엔솔이 남의 몫을 가로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삼성SDI가 양보한 것도 아니었다. 스텔란티스는 북미 JV 협력을 지속 요청했으나 삼성SDI 경영진이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니 스텔란티스가 물량 절반을 LG엔솔에 요청했고, 결과적으로는 삼성SDI보다 먼저 JV 협력에 나섰다. 삼성SDI는 LG엔솔 발표 다음날에야 양사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소식을 내놨다. 

      이때 합작투자 결정을 승인해주지 않은 것이 사업지원TF로 확인된다. 투자수익률(ROI)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영진이 보고한 JV 계획을 수개월 동안 보류한 것이다. 배터리 업계에서 삼성SDI는 배터리셀 수주 단가까지 TF에 보고하고 검증 받는 것으로 업계에 익히 알려져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2021년 8월 이재용 당시 부회장의 가석방에 맞춰 발표하는 투자계획에도 해당 JV 투자건이 올라갔는데, 사업지원TF가 반려하며 내용이 빠졌다"라며 "정작 이재용 회장 가석방 후 경영진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스텔란티스 협력이 틀어진 문제를 질책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진다"라고 말했다.  

      최윤호 사장은 그해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SDI로 이동했다. 권영수 전 LG그룹 부회장이 LG엔솔로,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이 SK온으로 각각 옮기던 시점과 겹쳐 외견상 체급을 맞추는 작업으로 비쳤으나 뒷말이 무성했다. 박학규 사장과 함께 포스트 정현호 사업지원TF장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삼성전자에서 계열사 삼성SDI로 가는 구도였기 때문이다. 

      최윤호 사장이 삼성SDI로 이동한 뒤 2차전지 사업 자체에는 힘이 실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경쟁사에 비해 고객사 수주 및 북미 확장에 소극적으로 나선 덕에 금리 인상기 들어 재무 안정성이 돋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배터리 업게 내에선 매년 최 사장의 삼성전자 복귀 전망이 오르내렸다. 삼성SDI도 엄연히 독립된 상장사인데 사업지원TF 출신 인사가 내려온 뒤 경영 자율성이 올라가는 상황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함께였다. 

      삼성SDI, TF 유리천장에 얻어걸린 유일한 성과?

      결과적으로 삼성SDI의 경쟁사 대비 준수한 재무 체력과 조달 안정성은 최윤호 사장의 공적으로 남게 됐다. 이번 인사 이동에서도 이 같은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투자업계에선 이걸 사업지원 TF 덕으로 봐야 할지, 최 사장 덕으로 봐야 할지 갸웃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사업이 굴러가는 상황을 종합하면 삼성SDI의 사업을 주도하는 주체나 의사결정 구조가 워낙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사업지원TF의 최대 공로가 삼성SDI의 공격적인 수주·증설을 억제한 건데, 알고 그랬다기보다는 얻어걸린 형국에 가깝다"라며 "배터리 사업의 낮은 수익성이 사업지원TF 특유의 관리 프로세스를 넘어서지 못한 덕이기 때문이다. 이게 공적이 되면 거버넌스 왜곡만 더 심해질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삼성그룹에 정통한 관계자 사이에선 최윤호 사장이 맡게 된 경영진단실에 대해 사실상 '삼성전자 밖에 설치된 TF'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 내에서 박학규 사장이 최고재무책임자(CFO)에서 사업지원 TF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터라, 삼성글로벌리서치 아래에 제 2의 관리 조직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법무법인 한 관계자는 "안중현 사장 때와는 달리 삼성글로벌리서치 아래 신설한 경영진단실 기능은 사실상 사업지원 TF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라며 "이재용 회장의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다 보니 삼성전자 외부에 경영진단실을 신설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이사회 넘어 사업 개입할 외부 기구만 매년 신설 

      삼성그룹 내부적으로도 이번 경영진단실 신설을 두고 잡음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사업지원 TF가 있는데 작년에는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했고, 올해는 경영진단실까지 생기면서 각사 이사회를 넘나들 수 있는 창구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외부 기구인 준법감시위원회까지 포함하면 이사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대신하는 기구만 네 곳에 달한다. 

      전일 DS부문 사장단 인사에서 드러난 변화 의지를 높게 사던 분위기도 금세 가라앉는 분위기다. 이재용 회장 재판 문제나 상속세 납부 등 오너일가의 사적인 숙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사업지원TF 체제를 손볼 수 없다는 식으로 사장단 인사 평가가 뒤집히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사업부 내부에서도 리더십 논란을 일으킨 한종희 부회장과 노태문 사장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디바이스경험(DX) 부문에서도 인재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어서다. 

      자문업계 한 관계자는 "미전실, TF 출신 인사를 놓지 못한다는 건 결국 당장의 사업 성과나 주주가치보다 오너일가의 문제가 더 시급하다는 뜻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라며 "삼성전자 내에서 비서실 역할 비슷한 기구가 계속해서 힘을 가져봤자 악순환만 계속될 거라 업계 전반적으로 불안감이 크다. 사장단 인사에 대한 임팩트가 하루만에 꺼져버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