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방어용 MOM 카드에…재계 "자충수" 우려
한경협 회원사發 MOM, 삼성ㆍSK 등 재계 당혹감
"같은 편이 던진 돌에 맞았다" 내부 반발 확산
정쟁 휘말린 기업지배구조…野 토론회가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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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이 던진 비지배주주 승인제도(MOM, Majority of Minority Voting) 카드가 재계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이지만, 그 파장이 상법 개정 논의로까지 번지며 재계 전반에 '최윤범 포비아'마저 확산되는 분위기다.
최 회장은 지난달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철회하며 MOM 도입을 제시했다. MOM은 지배주주와 이해관계가 있는 안건에 대해 소수주주 다수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제도로, 사실상 지배주주의 사익추구를 제한하는 장치다.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이 지분 약 40%를 확보한 가운데, 고려아연의 의결권 지분 중 국민연금이 6%,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가 약 20%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표심이 경영권 향방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최 회장의 MOM 카드는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승부수로 해석된다.
"회원사가 발목을 잡았다", "같이 죽자는 건가"…MOM 도입이 언급된 날 재계에서는 당혹감 섞인 반발이 터져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이미 지난 10월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이 기업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일반적인 분석 자료로 읽혔지만, 최 회장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MOM을 언급하면서 이 보고서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한경협의 위치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영풍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풍은 한경협 회원사이면서 이번 경영권 분쟁의 한 축이다. 한경협이 회원사의 이해관계가 걸린 상황에서 이런 보고서를 낸 것은 MOM 도입에 대한 재계의 우려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고려아연발(發) 후폭풍이 두산그룹 사태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그룹의 경우 '두산밥캣 금지법' 발의에 그쳤지만, 고려아연 사태는 상법 개정과 MOM 도입이라는 전체 기업 지배구조 논의로 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구조조정 차원을 넘어 재계 전반의 기업 운영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사안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의 우려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데다, 향후 삼성생명-삼성전자 지분 문제 등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MOM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SK그룹 역시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SK㈜,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들이 재무적투자자(FI)들의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MOM 도입시 의사결정에 제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의 대립은 재계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당초 정부도 상법 개정을 검토했으나 재계 반발로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상법 개정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재계는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야당 관계자는 "금융투자소득세, 가상자산 과세 등에서 이미 수차례 양보한 상황"이라며 "당론으로 채택한 상법개정안까지 물러설 수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현재 재계는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상법 개정과 MOM 도입을 동시에 막아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미 소액주주 보호라는 대세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달 4일 개최될 상법 개정 공개토론회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재계 입장에서 MOM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존재다. 한번 열리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특히 삼성그룹 같은 대기업에서는 가장 민감한 '역린'으로 여기는 사안인데, 개미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최윤범 회장이 너무 위험한 카드를 던진 것이 아닌가 싶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