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총괄국 외 14개 유관부서 참여
수정사항 다수는 가이드라인 미준수
회계펌·로펌 등 자문사 책임 목소리
전례 없어 수정·보완 불가피 반론도
-
올 한해 금융지주와 은행 등 금융사들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는 '책무구조도'였다. 자칫 최고경영자(CEO)에게 까지 법적 책임이 전가될 수 있는 탓에, 금융사들은 책무구조도 작성에 1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하며 공을 들였다.
내년 1월 본 시행을 앞두고, 현재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를 조기 제출한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다수의 금융사가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도 준수하지 않은 탓에, 당국으로부터 대거 수정 요청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현재 책무구조도를 조기 제출한 18개 금융사를 대상으로 피드백 및 컨설팅을 위한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 면담이 진행 중이지만, 일부 금융사들은 피드백을 마치고 책무구조도 수정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 내 책무구조도 컨트롤타워는 감독총괄국이지만, 이번 컨설팅에 14개의 감독·검사업무 유관부서가 붙었다. 가령, 책무구조도 내 IT 관련 책무의 경우 IT검사국에서 컨설팅을 진행하는 식이다. 금감원으로서도 책무구조도 조기 정착을 위해 상당한 '공수(工數)'를 들이고 있다는 평가다.
금융사들 역시 책무구조도 작성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제도가 시행된 이후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등 내부통제에 실패하게 되면, CEO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최대 '해임 요구'까지 받을 수 있는 탓이다. 빠르게 준비한 일부 금융사들의 경우, 지난해부터 회계펌과 로펌 등 자문사들의 도움을 받아 책무구조도 준비에 돌입하기도 했다.
다만 이와 같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금융사들이 당국이 제시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도 준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책무구조도 가이드라인 등을 담은 개정 지배구조법령 해설서를 마련해 금융권에 공유한 바 있다.
해설서상 책무는 중복되어 배분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복수의 금융사들이 이를 따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은행의 경우, 본사 영업그룹장이 있고 산하에 지역 영업본부장들이 있으면 영업그룹장이 져야 할 관리 책무를 지역 영업본부장들에게도 동일하게 배정하는 식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책무구조도를 조기 제출한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인센티브의 일종인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라며 "각 회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데서 오는 지적사항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수정사항이 많아지면서 당국은 당국대로, 금융사는 금융사대로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국은 피드백 사항이 늘어나면서 업무가 과중되고, 금융사 역시 책무구조도 수정 과정에서 이사회를 소집해야 해 업무가 늘어나게 되는 까닭이다.
개정 지배구조법상 ▲책무를 배분받는 임원의 변경 ▲책무구조도에서 정하는 임원 직책의 변경 ▲임원 책무의 변경 또는 추가되는 경우 이사회 의결을 통해 책무구조도를 변경해야 한다. 이에 앞서 금융사들은 조기제출 인센티브로 이사회 의결 절차 생략을 건의했지만, 당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자문사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된다. 올 한해 자문사들이 책무구조도를 자문하며 관련 수수료를 쏠쏠히 챙겼지만,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도 준수하지 못해 당국에 의해 대거 수정 요청을 받은 탓이다.
하지만 자문사 입장에서도 국내에서 책무구조도가 처음 시행되는 탓에 참고할 전례가 없어, 시행 초기 수정·보완을 거치며 당국과 협의하는 과정은 어쩔 수 없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달 책무구조도를 제출한 이후 국회 등에서 관련 자료 요구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수정 사항이 많아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자문사들의 도움을 받아 자체 시뮬레이션도 진행하며 작성에 상당한 공을 들였지만, 당국의 기준치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재 책무구조도 제출 시기가 내년 7월로 비교적 여유가 있는 증권사와 보험사들이 속속 자문사를 선정해 책무구조도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 연내 금융지주와 은행의 컨설팅이 마무리되면, 이들 회사들의 책무구조도 작성 작업은 한층 수월할 것이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