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에서 '탄핵' 정국으로...불확실성 커진 시장, 내년이 더 문제
입력 2024.12.05 07:00
    4일 증시ㆍ환율ㆍ채권시장 등 우려보다 안정적이었지만
    외국인 자금 이탈세 지속...세계국채지수 편입 불발 우려도
    규제 예측 가능성 사라진 게 더 큰 문제...세법 개정안 표류
    "외국인 자금 유출ㆍ원화 약세 불가피...관심도 떨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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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엄은 멈췄지만 여진은 지속되고 있다. 야당이 빠르게 대통령 탄핵 소추 절차에 들어가며 정치적 불확실성은 커졌고, 이는 곧바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국가 신뢰도 실추와 이로 인한 외국인 자금의 이탈 가능성이 꼽힌다. 경제ㆍ금융 관련 현 정부의 각종 정책 동력이 상실돼 당분간 표류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우려된다.

      탄핵 정국이 최대 6개월 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내년 1월로 예정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등이 맞물리면 '진짜 혼란'은 내년 상반기 찾아올 거란 전망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4일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1.4% 하락한 2464.00으로 거래를 마무리했다. 지난밤 대표적인 해외 코스피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인 아이셰어즈MSCI한국 ETF가 1.6%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환율 역시 전 거래일 종가(하나은행 기준) 대비 8.2원 하락한 1409.30원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국가 신용위험도를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계엄령 발표 이후 한때 0.32%에서 0.365%로 14% 넘게 뛰어올랐지만,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에 이어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이 통과되며 0.34%선에서 안정 추세를 보였다. 국채 3년물은 전일 대비 2.4bp(1bp=0.01%포인트), 국채 10년물은 4.8bp 올랐지만, 상승률이 1% 안팎으로 제한되는 모양새였다.

      계엄이 촉발한 불확실성이 4일 금융시장에 즉각적으로 큰 충격을 주진 않았지만, 여파가 이어지며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 불안이 금융 불안으로 이어지며 내년 초까지 한동안 대외 변수로 작용할 거라는 우려다.

      당장 외국인 자금의 추가 이탈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4일 코스피 시장에서만 4000억원을 쏟아냈다. 그나마 마감 동시호가때 일부 매수세가 유입되며 5000억원이 넘던 순매도 규모가 일부 줄어든 것이다. 코스닥과 선물 시장을 포함하면 이날 증시에서 외국인이 털어낸 매도 물량은 8000억원이 넘는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국내 증시 수급이 말라붙은 상황에서 코스피 지수가 2% 넘게 밀렸다가, 오후에 연기금이 1000억원이 넘는 순매수를 집행하며 겨우 한숨 돌린 모양새였다"며 "계엄이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곤 해도, 연말 북 클로징(장부 마감)이 가까워진 상황에서 정쟁으로 인한 불확실성까지 닥친 국내 증시에 외국인이 적극적으로 들어올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바로미터로 꼽혔던 채권시장의 경우 주식시장보다는 외국인 유출이 덜했다는 평가다. 이날 개장 후 한 시간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채 10년물을 3000억원 이상 순매수했다. 국채 3년물은 순매도 경향을 보이다 오전 11시경 순매수로 돌아섰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해 내년 11월로 예정된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며 내년 6월로 예정된 야간 국채 선물시장 개장 등이 미뤄지면 WGBI 편입을 장담할 수 없어진다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WGBI 편입으로 최대 75조원 규모의 외국인 자금이 국채 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외국인이 국채 순매수세를 이어가며 국채 금리가 강세(금리 하락)를 보인 건 이런 영향 때문인데, 해당 호재가 사라지면 외국인들의 국채 포지션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증권 이재만 연구원은 "국내 자산의 매력도 약화로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이 불가피하며, 한국의 대외 신뢰도 약화도 원화의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번 사태를 단기간에 수습해냈다는 점에서 시스템 안정성 및 복원력에 대해 재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신용채권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규제 측면에서 예측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 더 큰 이슈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4일 오후 2시40분 야당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제출하며 정국은 다시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대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당장 내년 예산안 심의가 중단된 상태고, 여야가 합의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 역시 실제 세법 개정안에 담길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올해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밸류업 프로그램' 역시 법적 근거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처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규정 관련, 정부는 상법 개정을 포기하고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이를 추진키로 했는데 야당인 민주당은 상법 개정에 무게를 두고 있어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내년 3월로 예정된 공매도 전면 재개 등 정책 추진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은 시장에 혼란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며 정부 의사결정의 주체가 사라지면 기존 계획 대비 차질이 불가피할 거란 전망이 많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내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반도체ㆍ이차전지 보조금 삭감과 보편적 관세 부과, 제2의 미중 갈등이 이어질텐데, 그때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돼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수출은 11월 피크아웃(고점 후 하락)이 확실하고 내년 경제성장률도 1%대로 점쳐지는 상황에서 '진짜 위기'는 내년 상반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