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의무 준수 위한 대손 부담 커져
책준 관련 대주단 vs. 신탁사 소송 사례도 급증
차입형과 관리형 중간인 혼합형, 정비사업이 대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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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신탁사들이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이하 책준형)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 2016년 처음 책준형 상품이 도입된 이후 약 8년 만에 자취를 감추게 된 셈이다. 책준형은 최근 신탁업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신탁사들은 책준형 사업을 대신할 새로운 먹거리로 기존 차입형과 관리형의 변형 구조인 혼합형(하이브리드형) 방식과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5일 신탁업계에 따르면 최근 책준형 신규 수주 건수는 전무한 수준으로 파악된다. 책준형 사업을 적극 수주했던 신탁사들이 책임준공 의무를 준수하기 위한 대손 부담으로 당기순손실이 크게 증가한 까닭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부동산신탁업권 당기순손실은 2277억원으로 집계된다.
책준형은 시공사가 기한 내 준공하지 못한 경우 발생 비용을 신탁사가 부담하는 상품이다. 책준형을 주사업으로 영위했던 신탁사는 신한자산신탁, 교보자산신탁, KB부동산신탁, 무궁화신탁 등이다.
책준형 상품으로 인해 대주단과 신탁사 간 소송 건수도 크게 증가했다. 특히 책준형 비중이 가장 높았던 신한자산신탁은 다수의 소송을 동시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신탁사가 기한 내 준공을 미이행하는 경우, 금융기관에 책임져야 하는 손해배상 범위에 대한 범위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데 관련 판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2016년 책준형 상품이 등장한 이후 2022년까지 신탁사의 책준 미이행 사례는 한 건도 존재하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 호황으로 인해 건설사업이 중단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년부터 공사비 급증으로 시공사가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하거나 건설사가 파산하는 사례가 생기면서 발생했다. 이에 신탁사가 해당 사업장의 공사를 책임지고 마무리해야 하는 사업장도 늘어났다.
책준형이 사라진 자리에 신탁업계는 신탁사와 대주단이 공동으로 자금 조달하는 '혼합형' 상품을 도입하고 있다. 혼합형은 기존 차입형 토지신탁과 관리형 토지신탁을 일부 변형한 방식으로 신탁사보다 타 대주단의 상환을 우선하는 것이 특징이다. 신탁사의 신탁계정대 투입으로 인한 부담을 줄이고, 대주단의 자금 회수(엑시트;Exit)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탁방식 정비사업도 적극 수주 중이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사업비 조달부터 분양까지 전 과정에서 신탁사가 사업에 참여해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을 신탁사가 해결하는 방식이다. 조합방식보다 협상력과 전문성이 높지만 그만큼 수수료도 높다. 시공사와 조합과의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됐던 둔촌주공 사례 이후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다.
최근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사례가 회자된다. 사업을 맡은 KB신탁이 자금을 조달해 롯데쇼핑이 보유하던 상가를 매입한 것이다. 상가로 인한 인허가 문제로 재건축이 지연되고 있었는데, 상가 주인이 사업자로 바뀌며 의사결정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이제 책준형으로 사업을 수주하는 신탁사는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며 "수주를 한다면 기존 관리형과 차입형의 변형인 혼합형을 하거나 재개발, 재건축에 눈독을 들이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