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최대 수혜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도 '미궁' 속으로
입력 2024.12.06 07:00
    에너빌리티·로보틱스 주총 1주일 앞으로
    두산그룹의 조급증?…ISS 보고서 이례적 반박
    얼라인 "해외 주요 기관투자자 반대표 행사"
    확산한 정치 리스크에 원전 사업 지속도 미지수
    원전株 폭락, 에너빌리티 주매청 가격 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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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두산에너빌리티는 의결권 자문사(ISS)의 '분할·합병 반대 권고'에 반박 자료를 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대기업 자본시장 거래에 반대 의견을 내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외부의 평가에 대해 해당 기업이 조목조목 반박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같은 대처에 대해 금융당국의 제동, 7차례 증권신고서 정정에도 불구하고 지배구조 개편을 포기할 수 없었고, 작업 막바지에서 "두산그룹이 조급함을 나타낸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개인주주의 연합, 행동주의펀드의 공세, 주요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대표 행사 등으로 구조 개편 성사를 낙담할 수만은 없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이어 탄핵 정국이 펼쳐지면서, 현 정부의 최대 수혜기업으로 꼽혔던 두산그룹의 구조개편은 미궁에 빠진 모습이다. 현재 정부의 원전 정책이 지속할지는 미지수이고, 벌써 이 같은 불안감이 주식 시장에 실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약하자면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캐시카우' 두산밥캣을 떼내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 같은 전략은 지난 정부에서 봉쇄했던 원전 정책이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상화했고, 쇠락의 길을 걷던 두산에너빌리티 역시 과거 수준으로 회귀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룹이 구조 개편을 발표할 무렵 한국수력원자력과 두산에너빌리티는 체코 정부로부터 신규 원전 사업을 위한 MOU를 맺었는데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발로 뛰며 마케팅을 할 정도로 사업에 힘을 실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두산그룹은 원전사업이 주력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성장세를 강조했고 오너일가의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두산로보틱스에 두산밥캣을 넘기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물론 투자자들의 반발과 금융당국의 제동에 구조 개편은 반 년 넘게 제자리걸음했으나 최근 증권신고서의 효력이 발생하며 어느덧 주주총회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급격히 혼란에 빠진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이 아니었다면, 두산에너빌리티의 구조 개편의 성공 가능성은 비교적 높게 평가 받았을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에 대한 ㈜두산의 지배력이 높고, 관련 발표 이후 주주의 손바뀜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찬성이 확실한 ㈜두산의 의결권과 분할·합병 이후 성장세에 기대를 건 최근 투자자들의 의결권이 합세한다면 특별결의(참석주주의 3분의 2이상 동의) 요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높았단 의미다.

      주주명부가 이미 폐쇄한 상황에서 정치적 이벤트가 발생했기 때문에 표결 구도가 뚜렷하게 바뀌는 건 아니지만, 관건은 주식매수청구권의 규모이다.

      계엄 선포란 정치적 이벤트가 발생한 직후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는 폭락했다. 코스피는 전일 대비 1.4% 하락하며 비교적 선방했으나 두산에너빌리티는 10%가량 하락하며 코스피 상장 기업중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주주총회 의결권을 가진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이 회사측에 주식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2만890원이다. 분할·합병 비율을 재산정한 이후 주가는 주식매수청구가격에서 등락을 거듭했으나 현재의 괴리율은 10% 내외로 형성돼 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주총회에서 분할에 반대하는 주주들을 대상으로 부여한다. 주총 통과여부와 상관 없이 일단 주식매수청구권을 확보하기 위해 반대표를 행사하려는 수요가 늘어날 수 있고, 주총 안건이 통과한 이후에도 주가가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면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예상보다 늘어날 수 있단 평가다. 회사측이 정한 주식매수청구권 한도는 6000억원이다. 두산로보틱스의 주가는 이미 주식매수청구권을 한참 밑도는 상황이 지속하고 있다.

      양사가 정한 주식매수청구 규모 한도보다 신청 규모가 많더라도 차입 등을 통해 자금소요에 대응할 여지는 남아 있다. 이 경우 재무건전성 저하, 외부 주주들에게 공세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단 점에서 부담스러운 상황에 몰리게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원전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두산그룹의 성장세 역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치적 리스크가 확산하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구조 개편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주총이 다가오면서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손익 계산에 분주한 모습이다. 두산그룹을 향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는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CalPERS), 캐나다 공적 연금(CPPIB), 브리티시 컬럼비아 투자공사(BCI), 캘버트 리서치&매니지먼트 등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번 분할·합병엔 국민연금공단의 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직까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향방에 대한 발표는 없는 상태다. 최근 두산그룹이 ISS의 보고서를 이례적으로 반박한 것은, ISS 보고서에 대한 신뢰도를 흔들며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반대표 행사에 나설 명분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이란 해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