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거래 비중과 그룹사 실적이 변수
3500억 부담 안고 불확실한 공모가
롯데지주 재무부담 시험대 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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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글로벌로지스와 재무적투자자(FI) 간의 계약 만기가 다가오면서 기업공개(IPO) 초침이 다시 제대로 움직일지 관심이다. 롯데쇼핑·세븐일레븐 등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추가적인 성장성을 보일 수 있을지, 또 내년에 롯데그룹이 계열사 상장을 강행할지가 주목된다.
롯데그룹의 물류 자회사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지난 10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이는 2대주주인 에이치PE(구 메디치인베스트먼트)의 풋옵션 행사 기한이 내년 초로 다가오면서 연장이 불가피해진 까닭이다. 롯데그룹과 에이치PE 간의 투자계약에 따르면, 롯데글로벌로지스가 거래소에 예비심사를 신청할 경우 풋옵션(주식매도청구권) 행사 기한이 자동으로 연장된다.
앞서 에이치PE는 2017년 롯데글로벌로지스 투자를 위해 에이치감마1ㆍ2호 프로젝트펀드를 결성, 총 2960억원을 투자해 지분 32.35%를 확보했다. 당시 기업가치는 약 9400억원으로 평가됐다. 현재는 지분 21.87%를 보유한 2대주주다.
투자 당시 롯데그룹은 에이치PE에 안전장치를 제공했다. 2021년 4월까지 IPO를 하지 못하면 보유지분을 롯데지주에 매각할 수 있는 풋옵션이었다. 이 기한은 세 차례 연기됐다. 롯데그룹 입장에선 그만큼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는 방증이다.
에이치PE 측은 "이번엔 무조건 상장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라며 "공모가가 투자 밸류와 맞지 않으면 롯데지주가 당사 지분을 인수해줘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그룹과 여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공모가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기업가치 1조5000억원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현실적인 기업가치를 6000억~7000억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풋옵션 행사가격은 에이치PE의 주당 평균취득단가(3만7337원)에 연복리 3%를 더한 4만7298원이다. 현재 보유지분(747만2161주)을 감안하면, 풋옵션 행사시 롯데지주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3500억원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롯데글로벌로지스의 그룹 계열사 의존도를 우려하고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2조6817억원 중 35.7%가 내부거래에서 발생했다. 코리아세븐(6.8%), 롯데웰푸드(5.6%), 롯데쇼핑(5.6%), 롯데칠성음료(5.3%), 롯데케미칼(3.9%) 순이다.
문제는 주요 거래처들의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케미칼은 3분기에만 4136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주가도 연초 대비 63% 폭락했다. 롯데쇼핑은 이커머스 부문에서만 5500억원의 누적 적자를 보고 있으며 부채비율은 180%에 육박한다.
물류업계 전반의 침체도 부담이다. 업계 1위 CJ대한통운의 주가는 연초 12만원대에서 8만원대로 추락했다. 내수 부진에 따른 물동량 감소와 택배 단가 하락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피어그룹 기업(동종업계)들로 평가받는 밸류에이션도 저조하다. CJ대한통운의 주가수익비율(PER)은 8~9배, 한진은 15배 수준이다. 이를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연환산 순이익인 약 500억원에 적용하면 기업가치는 최대 7000억원에 그친다. 목표로 하는 1조5000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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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IPO 흥행에 대한 시장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시장에서는 FI가 요구하는 기대수익률(IRR)을 맞춰줄 수 없어 IPO 자체가 좌절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대형 증권사 IPO 담당자는 "연말, 연초에는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여력이 높지 않은데 롯데그룹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도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공모주식의 절반이 에이치PE의 구주 매출이라는 점도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풋옵션 행사 시 롯데지주의 재무 부담은 만만치 않다. 롯데지주의 3분기말 기준 별도 현금성자산은 8694억원이다. 향후 1년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유동성이 1조원 안팎인데, 단기성 차입금과 자본적 지출, 배당금 등 2조5000억원의 자금소요를 충당하기엔 넉넉지 않은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그룹은 연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강병구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를 유임시켰다. 올해 초 CJ대한통운에서 스카우트한 물류 전문가에게 IPO라는 막중한 과제를 맡긴 셈이다. 결국 내년 초로 예정된 롯데글로벌로지스의 IPO는 단순한 기업공개를 넘어 롯데그룹의 재무적 부담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롯데렌탈도 그룹 차원에서 매각을 추진하고 있고, 롯데쇼핑도 실적이 악화된 상황에서 그룹향 매출이 높은 택배업체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