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합병 불확실성 걷혔는데…정치리스크에 생존게임 재개된 항공업계
입력 2024.12.11 07:00
    원달러 1430원 돌파…항공사들 달러 비용 부담 '직격탄'
    대명소노 2300억 배팅, 티웨이ㆍ에어프 지분확보 승부수
    LCC 이합집산 속 제주항공-이스타 합병 가능성도 부상
    中ㆍ日 노선 반납은 변수…업계 재편 속도조절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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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발(發) 금융시장 불안이 항공업계 재편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통합으로 촉발될 것으로 예상됐던 저비용항공사(LCC) 시장의 이합집산이 불확실성 증가 상황에 따라 속도 조절이 불가피해진 모습이다.

      9일 탄핵 정국 여파로 원ㆍ달러 환율은 1430원을 돌파하며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동안 환율 상승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시장에서는 최악의 경우 145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항공유, 항공기 리스료, 영공 통과료 등 주요 비용을 달러로 결제하는 항공사들의 재무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특히 항공업계 선두주자인 대한항공의 경우 전체 운영비용 중 연료비 비중이 3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이 10% 상승하면 영업이익이 2000억원 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돼, 환율 변동에 따른 실적 하락 위험이 크다는 평가다.

      항공업계는 대외 이미지 훼손도 우려한다. 영국 외무부는 이미 한국에 대한 여행 경보를 발령했으며, 블룸버그는 중국인 관광객이 내년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한 83만 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한 저비용항공사(LCC) 고위 관계자는 "국내 항공업계는 아웃바운드(한국인의 외국 여행) 여객 수요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현 시국에 큰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경영진들이 환율 측면에서 중장기적 리스크를 고민하기 시작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국내 항공업계의 지각변동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대한항공은 앞으로 약 2년여간 아시아나항공을 별도 자회사로 운영한 뒤 통합 항공사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진에어, 에어서울, 에어부산 등 3개 LCC도 통합될 예정이다. 3사가 보유한 항공기는 총 58대, 매출 규모는 2조4785억원으로, 현재 LCC 1위인 제주항공(항공기 42대, 매출 1조7240억원)을 크게 웃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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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시장 재편의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리조트업계 1위인 대명소노그룹(이하 대명소노)은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해 7월과 10월 총 2300억원을 투자해 티웨이항공(지분 26.77%)과 에어프레미아(지분 11.6%)의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AP홀딩스(46%)와 JC파트너스(22%)가 에어프레미아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가운데, 대명소노는 JC파트너스로부터 11% 지분을 인수했고 내년 6월 나머지 11%에 대한 콜옵션도 보유 중이다. 

      하지만 AP홀딩스의 높은 지분율로 인해 경영권 확보가 쉽지 않다는 평가다. 반면 티웨이항공의 경우 최대주주 예림당과의 지분율 차이가 3%포인트에 불과해 경영권 확보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대명소노가 두 항공사 모두 최대주주가 될 경우,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대명소노가 에어프레미아 지분 매각 차익으로 티웨이항공 지분을 추가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며 "고려아연 사태에서 겪었듯 상장사가 경영권 공격에 더 유리한 타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 1위 제주항공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채이배 제주항공 대표는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업계 재편에 대비해 M&A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2021년 VIG파트너스에 인수된 이스타항공이 M&A 매물로 거론된다. 두 항공사 모두 단거리 여객 노선에 집중하는 유사한 사업 구조를 갖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대한항공 산하 3개 LCC의 통합으로 거대 항공사가 출현할 경우, 제주항공으로서는 몸집 불리기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추가 노선 확보 기회도 열려 있다. EU 집행위원회(EC)의 최종 승인 이후에도 중국과 일본이 대한항공에 추가 슬롯 반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2022년 공정위 심사에서 제시된 34개 노선(국제 26개, 국내 8개) 외에도 양국 당국이 자국 노선에 대한 추가 반납을 요구할 것이란 관측이다.

      항공업계는 이 과정에서 국내외 LCC들의 노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공정위가 발표한 1차 반납안은 시작일 뿐이며, 중국과 일본 당국의 추가 슬롯 반납 요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국내 LCC들은 물론 외국 항공사들도 신규 노선 확보에 나서는 등 업계 재편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다만 시장에선 M&A나 신규 노선 개설 등을 위한 투자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 침체와 불확실성으로 인해 항공사들의 투자 여력이 제한적인데 탄핵 정국에서 투자자 유치나 차입 등 외부 자금조달 환경이 더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결국 규모의 경제가 생존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형사 통합을 시작으로 LCC 시장 전반의 재편이 불가피하지만 정치적 불안정이 해소되지 않는 한 M&A를 포함한 업계 재편은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