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온 PF 시장에 떨어진 '계엄령 폭탄'…연착륙 기대감에 찬물 끼얹었다
입력 2024.12.12 07:00
    PF 연착륙 기대감 속 외국계 자본 이탈 조짐
    정치적 불확실성에 PF 시장 경색 심화되나
    신탁사는 재무건전성 악화에 책준 소송까지
    자금조달 절벽 우려…투심 급랭·시장 '찬바람'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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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 '계엄령 선포'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가 덮쳤다. 금리 하락과 함께 살아날 듯했던 시장 기대감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수많은 위기설에도 불구, 버텨오던 시장이 날벼락을 맞았다는 평가다. 국내 투자를 늘려가던 외국계 자본이 관망세로 돌아서며 사업이 지지부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PF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신탁사 부실화까지 겹치며, 여파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부동산 PF 시장은 그간의 위기설 속에서도 버티기에 성공하는 모습이었다. 수도권 중심의 우량 사업장들은 견조한 수요를 보였고, PF 주선을 맡은 증권사들은 내부 목표치 달성에 성공했다. 이 덕분에 시장에선 실적 개선과 함께 성과급 기대감까지 나오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계엄령 선포·탄핵 무산 등 정국발 불안이 확산되면서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PF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물류센터에서 호텔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가던 외국계 자본이 관망세로 돌아서며 사업 진행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는 평가다. 

      한 외국계 자문사 관계자는 "최근 국내 운용사가 외국계 투자자와 함께 사업장을 여럿 인수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이번 사태로 외국계 입장에선 투자 계획 재검토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기존 사업장이 근근이 버티더라도 신규 사업이 나와줘야 시장이 유지되는데, 이번 사태로 새 물건이 더욱 나오기 어려워졌다"며 "결국 시장 전체가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부가 위기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정치적 혼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지난달 발표한 'PF 제도 개선 방안' 등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수도 있다는 점이 이슈로 꼽힌다. 정부 주도로 은행ㆍ보험권이 설립한 1조원 규모 신디케이트론은 반 년간 고작 3곳(총 3590억원)의 사업장에 자금을 지원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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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PF 시장에서 자금조달의 한 축을 담당하던 부동산신탁사들의 사정도 악화일로다. 이들은 그동안 책임준공 보증 등을 통해 PF사업의 신용을 보강하는 역할을 해왔으나, 최근 잇따른 개발사업 부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부동산PF 시장의 핵심 축인 신탁사들이 유동성 공급자이자 신용보강 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미 신탁업계는 재무건전성 악화라는 뚜렷한 위기 신호를 보이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부동산신탁사업권의 당기순손실이 2300억원에 달한다. 무궁화신탁 등 일부 신탁사는 당국으로부터 강제 구조조정 요구를 받았다. 

      무궁화신탁은 현재 매각 작업이 시작됐지만, 현 시점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 2~3배를 주고 매수에 나설 주체를 찾기는 쉽지 않을 거란 예상이 많다. 인수 후에도 추가 자금 투입이 얼마나 이뤄져야할 지 예측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자금력이 충분한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들조차 얼마나 더 수혈을 해야할지 불확실하다는 점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신한자산신탁은 건전성 지표인 NCR이 작년 말 927%에서 올 3분기 204%로 급격히 하락하면서 업계 전반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KB금융은 작년과 올해에 걸쳐 KB부동산신탁에 3000억원을 투입했다. 추가 증자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상황이다.

      여기에 책임준공 소송이라는 시한폭탄도 있다. 책준형 신탁을 주로 취급한 신탁사들은 대주단과 잇따라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쟁점은 배상 범위다. 대주단은 대출 원리금 전액을, 신탁사들은 연체이자만 배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소송들의 결과는 신탁업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자기자본 천억원대 신탁사들의 책임준공 잔액이 조 단위에 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용평가업계는 원리금 전액 배상 판결이 나올 경우 신탁사들을 즉각 신용등급 감시대상에 올릴 것이라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은 NCR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신탁사 건전성 제고에 나섰지만, 시장의 신뢰 회복이 관건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신탁사의 신용보강 기능을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느냐가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탁사들은 이미 위험관리 차원에서 책임준공형 사업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현재 대부분의 신탁사가 책임준공 보증이 필요한 신규 사업은 거의 수주하지 않고 있다"며 "재무건전성 악화와 소송 리스크, 시장 불확실성 등이 겹치면서 앞으로 신규 사업 발굴은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