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끝내니 눈앞엔 식물 정부…내년 판 다시 짜야 할 재계
입력 2024.12.12 07:00
    탄핵정국에 정부 마비…12월 후속계획 짤 수 있을까
    트럼프 2기 코앞…누가 대행 맡건 외교공백 불가피
    5대그룹 자산 재배치 작업 차질 가능성…불확실성 多
    "트럼프용 선물 마련 외에는"…확실한 선택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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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기업들은 올해도 위기감 속에 정기 인사를 앞당겨 진행했지만 내우외환의 그림자가 갈수록 짙어진다. 사활을 걸었던 신성장 사업은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배가 산으로 갈 지경이다. 통상 환경이 복잡해진 만큼 정부가 제 몫을 해줘야 하는데 관료들은 비상계엄에 볼모 잡혀 있다. 대통령의 외교적 수완을 기대하기는커녕 예정된 불확실성에 손도 못 댄 채 12월을 보내야 하느냐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시장은 일찌감치 불확실성에 휘둘리고 있다. 한국은 그간 동아시아에서 안정적 투자처로 여겨져 왔지만 대외 신인도가 흔들리자 내년 한국 경제에 하방 리스크가 크게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쏟아진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첫 탄핵안이 부결된 후 첫 거래일 코스피는 올해 처음으로 2400선이 깨졌다. 같은 날 원화가치 역시 달러당 1430원을 돌파하며 2년2개월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막 인사를 마친 대기업 그룹으로선 막막한 상황이다. 통상 기업들은 연말 인사 직후 이듬해 사업계획을 위한 전략 회의를 가져왔는데, 보조를 맞출 정부가 사실상 공백 상태에 놓인 탓이다. 

      이미 3분기부터 국내 기업 수출 실적이 구조적 감소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와 같은 IT 품목을 제외하면 대기업 주 무대인 수출 실적 전반이 부진하다는 얘기다. 반도체 역시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품목을 제외하면 범용 D램 수출은 재차 고꾸라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한 달여 후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이 같은 상황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대통령 거취를 최대한 빨리 결정해서 불확실성을 줄여도 통상 문제 대응에는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며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을 최종 책임지는 구조에서 누가 권한대행을 맡더라도 선거를 마칠 때까지 계속 논란이 일어날 것. 정권이 바뀔 수 있다면 누가 책임을 지려할까"라고 지적했다. 

      10일 제안된 '여야정 3자 비상경제 점검회의'와 같은 임시 협의체가 구성되더라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전해진다. 재계에 따르면 이미 지난 총선거 이후 부처를 가리지 않고 관료사회 전반이 복지부동에 빠진 상황으로 전해진다. 탄핵정국을 버티기 위한 3자 임시 협의체가 출범한다고 하더라도 기업의 애로 사항이나 민원을 들어주는 창구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관료 사회에선 이미 수개월 전부터 정권 교체 가능성을 이유로 국가형 AI와 같은 핵심 사업에서까지 주무부처들이 손사래를 쳐왔다"라며 "현 정권 초기에도 반도체 산업 관련 테이블이 차려지기까지 1년여 이상 걸렸는데 지금 같은 때에 특정 대기업 사업에 힘을 실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5대그룹의 구조조정을 포함한 사업 합리화·자산 재배치 작업 전반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 삼성그룹을 제외하면 현대차그룹부터 SK, LG, 롯데그룹까지 핵심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태다. 완성차와 2차전지, 정유, 석유화학, 철강, 디스플레이 등 주력 사업 전반이 미국과 중국의 통상 갈등 수준에 따라 휘청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모두 과거 수출시장에서 중국 산업과 보완 관계에 있다가 지난 몇 년 동안 경쟁 관계로 입지가 뒤바뀐 사업들이다. 미국이 대중 관세로 장벽을 높이면 나머지 시장에선 국내 대기업 제품이 값싼 중국산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연초부터 시작된 자산매각 작업의 선택지 역시 내년 이후 더 좁아질 수 있다. 현재 그나마 대기업 자산을 받아줄 곳은 조 단위 펀드를 보유한 몇몇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로 한정돼 있는데, 이들 역시 자금력에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정리가 필요한 국내 대기업 사업 대부분이 미·중 사이에 끼인 구도다. 한국 정부의 대미·대중 외교 노선이 불명확한 상태라면 국내외 불문 어떤 투자자도 국내 대기업 자산을 꺼려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정권이 안정적일 때도 미국 요구를 따라주되 인도 시장을 확보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 선택지로 거론됐다. 지금 상황에선 시나리오를 검토해 봐야 뚜렷한 답이 나오기 어렵다"라며 "현대차그룹이나 SK하이닉스처럼 이미 잘나가는 사업의 미국 현지 공장 준공, 투자 발표 시점을 조절하는 식으로 트럼프용 선물을 준비하는 것 외에는 확실한 선택지가 안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