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렌탈 이후 분위기 급변…다시 롯데타워 찾는 자문사들
입력 2024.12.16 07:00
    롯데, 기업 팔지 않는 보수적 문화 특징
    케미칼 회사채 사태로 전향적으로 변화
    시가 2배 제시받자 롯데렌탈 전격 처분
    변화 감지한 자문사들 다시 롯데 찾아
    지주 키맨들 유임…내년 거래 늘어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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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롯데그룹이 롯데렌탈을 매각하며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전엔 사업 매각에 극히 보수적이었지만 이제는 알짜 자산이라도 몸값만 맞으면 팔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거래를 만들어내려는 M&A 자문사와 사모펀드(PEF)들이 다시 롯데그룹을 앞다퉈 찾는 모습이다.

      작년 롯데건설에 시달린 롯데그룹은 지난달엔 롯데케미칼에 휘청였다. 롯데케미칼 3분기 보고서 제출로 재무약정(3개년 평균 EBITDA/이자비용 5배) 위반이 확정됐다. 당장 2조원 대 회사채를 상환할 위험이 생기자 그룹이 분주해졌다. 롯데월드타워를 약정 조정 담보로 제공했고,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도 매물로 내놨다.

      지난 6일엔 롯데렌탈 경영권 매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지난달 22일 '롯데렌탈 지분 매각에 대한 제안을 받았으나 결정된 바 없다'고 밝힌 후 2주 만이다. 거래 대상은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보유한 롯데렌탈 지분 56.2%고, 매각가는 1조6000억원이다. 시가 2배 이상의 프리미엄이 얹어졌다.

      롯데렌탈은 그간 꾸준히 잠재 매물로 거론됐지만 그 가능성은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더 많았다. 과거 그룹의 M&A 역량이 남아 있을 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인수한 자산이라 애착이 강했다. 올해도 여러 투자은행(IB)과 PEF가 거래를 위해 그룹 문을 두드렸으나 긍정적인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런 롯데렌탈을 전격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룹 내 변수 발생, 인수자의 제안, 매각 MOU 체결까지 일련의 과정이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숨가쁘게 이뤄졌다. 시장 불안을 잠재우겠다는 그룹의 의지와 드라이파우더 소진이 급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의 상황이 맞아 떨어졌다.

      롯데렌탈 매각에 시장도 반응하고 있다. '기업을 팔지 않는 문화'는 이번 계기로 상당부분 희석됐다는 것이다. 돈을 잘 벌고 시장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자산을 먼저 내놓은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시장의 시선은 이제 다음 대상은 무엇이냐로 집중되고 있다. 롯데케미칼 건자재 사업, 롯데캐피탈, 롯데칠성음료 주류사업 등 이전까지 거론됐던 자산들이 다시 부상하는 모습이다. 몇몇 자산은 시기 문제일 뿐 이미 매각 대상으로 분류하고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M&A 자문사와 PEF 등도 다시 롯데그룹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아직 활용할 자산이 많고 그룹의 의지도 확인된 만큼 거래를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이전이면 건설경기가 안 좋다, 일본 쪽 자산이라 실익이 없다, 그룹의 애착이 강하다 등 거래가 어려운 이유를 댔겠지만 이제는 해야 할 명분을 찾는 분위기다. 머뭇거리면 롯데렌탈처럼 링에 오르기도 전에 기회를 날릴 수도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 위기론은 실제보다 과장된 면이 있지만 시장의 인식을 바꾸려면 그룹이 바뀔 필요도 있다"며 "돈이 되고 시장이 원하는 사업을 먼저 내놨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말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사장단이 대거 교체된 가운데 그룹 살림을 총괄하는 지주에선 이동우 부회장이 유임됐고, 노준형 경영혁신실장이 사장 승진했다. 자산 매각이나 사업조정 등을 이어갈 동력은 유지됐다는 평가다. 노 사장의 내년 핵심 과제도 사업 매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초는 기업들이 자산을 내놓기에 유리한 환경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줄 기업은 많지 않지만 드라이파우더를 쌓아두고 있는 PEF는 많기 때문이다. PEF간 경쟁 상황에 따라 롯데그룹이 흔쾌히 매각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의 프리미엄을 얹어주는 곳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롯데렌탈이 전격적으로 팔린 후 시장의 인식이 달라졌고 자문사들이 앞다퉈 롯데그룹을 찾아가고 있다"며 "다만 롯데그룹의 협상 스타일이 깐깐하기 때문에 실제 거래를 이끌어내려면 상당한 품을 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