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여파' LCR 규제 미뤄달라는 은행들...'정책 일관성' 고민 빠진 금융당국
입력 2024.12.17 07:00
    연말·연초 자본비율·유동성 규제 등 적용 예정
    원화 약세 지속되자 은행권에선 '도입 연기' 요구
    원달러 환율 당분간 예전 수준 돌아가기 어렵다는데
    당국, '정책 좌초' 우려...외화 LCR은 완화 '만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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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비상 계엄사태에 이어 탄핵정국에 들어서면서 원화 약세가 지속되자 은행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연말·연초 은행권에 도입될 예정이었던 유동성 및 자본비율 규제와 관련한 부담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당국에 관련 규제 도입 시기를 늦춰달라는 요구를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정책 일관성을 고려해 쉽사리 규제 손질에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다만 정부차원에서 외화 수급 대책을 준비하며 외화 LCR에 한해서는 일부 완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일부 은행들은 금융당국에 올 연말 도입 예정이었던 스트레스 완충자본 규제를 유연화 해줄 것을 건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일부 은행들은 내년 적용 예정이었던 LCR 정상화 또한 내년 1분기 이후로 미뤄달라는 건의 또한 전달했다.

      이는 비상 계엄사태 이후 환율이 1440원대까지 오르는 등 금융권 전반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 시 외국인 자금 이탈로 외화 LCR 하락 우려가 커진다. 원화 LCR 또한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환율이 상승하면 신용보강약정서(CSA)에 따라 고유동성자산을 담보로 넣어야 하는데 이에 따라 LCR비율이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지난 2020년부터 금융규제 유연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은행 통합(원화+외화) LCR 규제비율은 기존 100%에서 85%까지 낮아졌다. LCR 규제비율을 단계적으로 높여 왔던 금융당국은 내년 초 이를 100%로 정상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은행은 통상 연말에 만기 도래하는 자금이 크게 늘어나는 점을 고려해 계엄사태 발생 이전에 금융당국에 LCR 정상화 시기를 내년 1분기 이후로 유예해 달라는 건의사항을 전달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은행권이 LCR을 정상화 수준인 100%를 웃도는 수준으로 관리 중인 점 등을 고려해 이를 유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단 평가다. 은행권에선 탄핵 정국 장기화로 환율이 오름세를 지속할 경우 LCR 정상화 또한 유예해야 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상화 수준인 100%를 맞추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내부적으로 설정한 '자체 버퍼'를 맞추기 위해선 추가 조달이 필요할 것이란 점에서다.

      다만 환율 급등으로 외화 수급이 이슈가 되며, 정부 차원에서 외화 LCR 비율 규제는 완화해줄 거란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르면 이달 중 외화 수급개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인데, 여기 외화 LCR 규제 기준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이 담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행 외화 LCR 규제기준은 자기자본 대비 80%이며, 코로나19 당시 70%까지 낮췄던 전례가 있다.

      업계에선 당분간 환율이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위가 LCR 규제를 정상화하겠다고 밝힌 시점과 현재 원달러 환율이 30원 이상 차이가 나는 상황"이라며 "당시 당국에서도 환율이 이 정도 수준으로 오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은행채 발행을 통한 고유동성자산 조달이 쉽지 않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시중은행 자금부 한 관계자는 "연말이라 은행들의 은행채 발행 한도(북)가 거의 없는 상태"라며 "한도가 남아있어도 투자심리가 위축돼 있어 발행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외화 조달 또한 마찬가지다. 이 관계자는 "(외화채 발행 관련)지역별로 들려오는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다"라며 "불안정성이 지속될 경우 발행 여건이 지금보다는 나빠질 걸로 예상돼 차입이나 외화 예금 등 안정적인 조달을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연말 은행권 적용이 예정됐던 스트레스완충자본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환율 민감도가 높은 대형 금융지주들의 자본비율 관리가 한층 까다로워졌고, 경기 악화로 자본비율에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지방금융지주들의 어려움도 커진 상태다.

      이러자 은행들은 최근 간담회 등에서 당국에 자본비율 계산과 관련해 기술적인 부분에서 산정 기준을 완화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당국도 국제 기준 내에서 산정 방식을 유연화 하는 방식 및 스트레스 완충자본 단계적 적용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당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기존 시행이 예정돼 있던 규제 적용 시점을 미룰 경우 기존 정책 시행이 줄줄이 좌초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어서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규제 완화에 대한 시그널을 받아들 때 기존에 하려던 정책이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해석할까봐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라며 "기존 정책은 그대로 추진하지만 연말 등 외부적인 요인을 고려해 시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면 (규제 완화를) 하겠다는 취지를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