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證, NH證과 격차 벌리며 1위 수성
캡티브 경쟁 경고에 수수료 경쟁으로
연말까지 발행봇물…'저금리 차환' 목적
SK 올해도 발행 1위…한화도 조달 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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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예년보다 회사채 발행량이 크게 늘면서, 증권사들 간의 주관 경쟁도 뜨거웠다. 주관 순위는 KB증권이 NH투자증권을 따돌리고 1위를 수성했다. 연말까지 회사채 시장을 찾는 기업들이 많았고, 주관 자격을 따내기 위한 수수료 '출혈 경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2024년 4분기 누적 기준 채권자본시장(DC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증권사가 주관을 맡은 무보증 공모회사채(일괄신고 제회)는 83조215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6조원에 비해 회사채 발행 규모가 크게 늘었다. 이는 금리 인하에 저금리로 차환에 나서려는 기업들이 연말까지 회사채 시장을 찾은 영향이란 평가다.
주관 규모가 늘면서 주관사들의 경쟁도 한 층 치열해졌다.
전체 주관에선 KB증권이 올해 총 307건에 18조2337억원을 주관하며 1위를 차지했다. 2위 NH투자증권은 213건에 13조9488억원을 주관했다. 지난해 두 증권사 간의 격차는 4조원가량이었는데 올해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회사채 부문에서도 KB증권은 1위를 차지했다. KB증권이 14조4699억원을, NH투자증권이 13조2678억원을 주관했다. NH투자증권이 연말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산하 4개 리츠의 회사채 발행을 주관하며 '건당 25만원' 수수료를 제시하는 등 수수료 출혈 경쟁도 불사했지만, KB증권을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해 주관사들 간의 경쟁 양상이 계열사를 동원한 '캡티브 영업' 위주로 흘러갔다면, 올해는 수수료 경쟁으로 옮겨갔다. 이는 주관사들의 캡티브 영업이 회사채 금리를 왜곡시킨다는 불만이 나오자, 금융당국이 경고 목소리를 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감원은 아직 캡티브 영업에 대한 제재에 나서진 않았지만, 상반기 관련 자료를 검토하며 실태파악에 나선 바 있다.
KB증권은 1위 수성을 위해 3분기부터 다수의 금융채 주관을 맡으며 '순위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실제로 KB증권은 한화생명보험과 삼성증권, 신한증권, 교보생명보험 등 금융사들의 회사채와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의 주관 자격을 따냈다. 이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으로 PF ABS가 줄어는 영향이란 분석이다.
한 증권사 커버리지 담당자는 "PF ABS는 통상 KB증권이 많이 주관하며 실적을 챙겼는데, 올해는 작년에 비해 물량이 줄어들면서 순위 수성을 위해 금융채 주관에 사활을 걸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오랜만에 회사채 시장을 찾은 삼성그룹의 물량을 경쟁사인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등에 내준 것은 KB증권으로서 아쉬울 수 있다는 평가다. 한국투자증권은 호텔신라를, NH투자증권은 삼성물산과 3년 만에 회사채 시장을 찾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발행 주관사를 맡았지만 KB증권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ABS 부문에서는 KB증권이 3조7678억원을 주관하며 1위를 지켰다. 지난해 4조2591억원을 주관한 것과 비교하면 규모 자체는 줄었다. PF 관련 ABS가 줄어든 영향으로 풀이된다. SK증권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2022년 4위였던 SK증권은 지난해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올해 1조8540억원을 주관하며 한국투자증권을 누르고 2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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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업집단 중 조달 규모 1위를 기록했다. 올해만 7조3000억원을 공모 회사채 시장에서 조달했다. 연초부터 SK브로드밴드와 SK인천석유화학, SK E&S, SK에코플랜트 등 다수의 계열사가 활발히 조달을 이어나갔고, 12월에도 SK텔레콤이 3000억원을 조달했다.
한화그룹이 예년보다 활발히 회사채 시장을 찾은 점도 주목할만한 지점이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2조2600억원을 조달했는데 올해는 3조8740억원으로 그 규모가 크게 늘렸다. 그동안 회사채 시장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한화손해보험, 한화시스템, 한화에너지,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한화오션 등이 조달을 이어갔다.
특히 한화오션은 9년만에 회사채 시장을 찾았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신용등급 BBB+로 비우량채에 속하는 한화오션은 500억원 모집에 4200억원의 수요를 받았다. 시장의 우호적인 투심을 확인한 한화오션은 내년에 물량을 늘려 한 번 더 회사채 시장을 찾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내년에도 올해만큼 회사채 시장이 바쁜 한 해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올해 금리 인하 기대감에 회사채 시장을 찾는 기업들이 많았다면, 내년은 금리 인하가 본격화하는 시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당장 다음달에만 10조원에 가까운 회사채의 만기가 도래한다.
'연초 효과'에 힘입어 연초부터 회사채 시장이 활발할 것이란 관측이지만, 최근 국내·외 정세(政勢)가 변수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며 불안정성이 일정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지만, 여전히 정국 혼란이 이어지고 있고 대선 등의 변수가 남아 있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을 앞두고 있는데, 벌써부터 금리인하 규모가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대선 전 1~2월에 조달을 마치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라며 "금리인하 폭에는 현재의 전망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금리 하락 자체는 기업들의 조달환경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