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자자·대기업 위축에 IPO·M&A 안갯속
기업 자금조달 및 사업조정 거래는 늘어날 듯
PEF는 투자기회 기대…내년 전망 낙관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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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본격적인 탄핵정국이 시작된다. 시장의 불안감은 다음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한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분명 비상계엄 사태 이전보다 상황은 어려워졌지만 이런 중에도 기회를 찾는 움직임은 꾸준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자문사들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 및 사업조정 수요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규모 자금을 쌓아둔 사모펀드(PEF)들은 좋은 자산을 염가에 사들이기 위해 경쟁할 전망이다.
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시장은 대혼선을 빚었다. 계엄이 수 시간 만에 해제되며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상흔은 얕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안전하다고 평가 받던 한국의 대외 신인도가 크게 악화했다. 국회가 대통령 탄핵을 결의하며 시장은 다시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들어가게 됐다.
올해 하반기부터 조금씩 살아날 기미를 보이던 투자시장이 된서리를 맞았다. 당장 진행 중인 거래가 영향을 받았고 앞으로 진행될 거래들도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 내년 시장 분위기가 올해와 비슷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탄핵 충격파가 작다기보다는 그만큼 올해가 부진했기 때문이다.
IPO 등 지분투자(Equity) 영역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적지 않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 대한 경계심을 여전히 늦추지 않고 있다. 글로벌 시장 의존도가 높은 대형 거래일수록 실행 시기를 잡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한 외국계 IB 대표는 "올해 시장이 좋지 않았는데 내년에도 탄핵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투자에 나서길 주저하기 때문에 IPO를 추진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올해 내내 허리띠를 졸라 매는 모습을 보였는데 내년 전망은 더 어둡다. 탄핵정국이 끝나기 전까지는 정책이나 제도의 향방을 점치기 쉽지 않다. 여력도 없거니와 정국의 불확실성 때문에라도 큰 일을 벌이기 어렵다. M&A 시장도 위축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다른 외국계 IB 대표는 "이런 정치 불안 상황에서는 대기업들이 결정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M&A를 추진하기도 어렵다"며 "다음 정부가 탄생한 후에야 불확실성이 걷힐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물론 모두가 부정적 전망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경제는 이미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고, 탄핵정국도 두 번이나 넘었다. 위기는 결국 지나가기 때문에 금세 안정을 찾을 것이란 낙관론도 없지 않다. 시장 참여자들 역시 거래를 계속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시장은 큰 충격파를 피했다. 계엄사태 직후 일부 금융사 임원은 동남아시아 거래처에서 안부 전화를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우려할 만한 금융 위기 사태는 없었다. 외화 거래 등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면서 한국 경제의 안정성이 부각됐다는 시각도 있다.
기업들은 '바이어'로서 역할은 줄겠지만 '거래 발생처'로서 존재감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만큼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올해 유행했던 PRS(주가수익스왑) 등 구조화금융을 비롯 자산 매각, 채권 발행 등 움직임이 내년에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문사들도 이런 일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채권 발행은 연초 효과가 기대된다. 기업들은 일찌감치 자금을 조달해두려 움직이고 있다. 해외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들은 신용도가 높기 때문에 무난하게 회사채를 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 입장에선 지분투자에 비해 위험 부담도 덜하다.
또 다른 IB 대표는 "탄핵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긴 했지만 꼭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며 "기업들의 자금 조달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벌써부터 연초에 회사채를 찍으려는 수요가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PEF들은 내년 자본시장에서 활약을 예고했다. 대기업이 내놓는 자산을 받아줄 곳은 PEF밖에 없는 상황이다.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등 대형사들이 조단위 자금을 쌓아두고 대기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경영권인수(Buyout), 사업부분할(Carved out), 유동성 투입(크레딧)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된다. 탄핵 로드맵이 나왔고, 장기 투자 전략을 펴는 만큼 단기간의 충격은 감수할 만하다는 분위기다.
한 대형 PEF 대표는 "PEF는 장기 투자 전략을 펴고 이전에도 여러 위기를 넘어왔기 때문에 단기 상황에 일희일비 할 필요는 없다"며 "지금 상황은 위기이자 기회"라고 말했다.
다른 대형 PEF 대표는 "내년도 올해처럼 기업은 자산을 내놓고 사모펀드는 이를 인수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거래보다는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거래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PEF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국 상황에 충격을 받고 조심스러워진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아시아 시장의 한 축인 한국 시장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업들의 곤궁한 처지나 최근 환율 상황도 투자하기에 유리한 요소다. 과거 한국의 위기 상황에서 기회를 잡았던 곳들이 많다.
한 글로벌 PEF 대표는 "대기업들은 본업이 부진해지면서 현금을 미리 쌓아둬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이런 상황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내년 시장을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