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리스크發 신용경색…내년도 회사채 발행시장은 '혼돈'
입력 2024.12.20 07:00
    내년 초 16조 회사채 만기 도래하지만
    트럼프ㆍ탄핵 등 리스크에 유동성은 선별적
    건설ㆍ유통ㆍ2차전지 등 취약업종 조달난
    킥스 도입으로 보험채 발행 대거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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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치적 불확실성이 채권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기업 자금 조달의 차별화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년 초에만 15조원이 넘는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는 가운데, 트럼프 정부와 부동산PF 리스크 등 악재가 잇따르며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자금조달 경색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직후인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회사채 약 2400억원이 순상환됐다. 올해 10월(3조754억원)과 11월(3조5700억원)에 각각 3조원 넘게 순발행되던 시장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진 양상이다. 불과 며칠 전까진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 기조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존 발행사들 이외에 여러 새로운 발행사들이 채권시장 발행을 재개하는 추세였다.

      단기물 시장에서는 이미 투자심리 위축이 감지되고 있다. 올해 10월까진 국내 건설사들이 3개월 만기 전자단기사채를 연 4%대 중반 금리 수준에서 발행할 수 있었지만, 정치적 리스크가 부각된 최근에는 연 7% 금리에 투자자를 겨우 모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에는 ABL생명과 효성화학이 각각 1000억원, 3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해 전액 미매각됐다. 

      내년도 크레딧 시장은 대내외 변수가 맞물리며 변동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업계에서는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 2기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대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될 경우, 회사채 시장 전반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가시화할 경우 투자 심리가 개선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실적이 안정적인 기업들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대형 증권사 기업금융부 관계자는 "대규모 조달이 필요한 기업들이 신용등급 저하 가능성을 두고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다"며 "신용등급 AA급 기업의 대규모 발행만 시장에서 소화될 수 있는 상황이고, 기준금리가 본격적으로 내려갈 경우에도 싱글A까지만 수혜가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정치 불안과 경기 둔화 우려로 건설ㆍ유통ㆍ2차전지ㆍ석유화학 등 취약업종에 대한 신용평가사들의 모니터링이 강화될 전망이다. 일부 기관들은 이미 이들 업종에 대한 채권 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익스포저가 큰 금융권과, 불리한 산업환경 속 실적부진 및 유동성 위험이 있는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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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런 시장 상황은 증권사들의 우량채 선점 경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 하반기 계열사를 동원한 '캡티브 영업'에 대한 당국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주춤했던 양상이었으나, 내년에는 오히려 더 치열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한도(Book) 및 자본 제약(BIS비율)이 큰 중소형사일수록 캡티브 영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기관들도 이를 이용해 수요예측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발행 후 유통물을 매수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어 캡티브 관행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험업계의 자본확충 이슈도 증권업계 주요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새 회계제도인 킥스(K-ICS) 도입으로 보험사들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2~3년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주관사 선정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대형 증권사들이 상위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 물량을 선점하는 상황에서, 중위권 증권사들은 중소형 보험사 물량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킥스가 단계적으로 도입되는 만큼, 보험사들도 이에 맞춰 자본비율을 점진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이라며 "기존에 확보한 자본비율을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발행 수요가 꾸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내년도 회사채 시장은 우량기업과 취약기업 간 자금조달 여건이 더욱 차별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치적 불확실성과 대외 리스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업 펀더멘탈에 대한 시장의 눈높이는 더욱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연초인 만큼 유동성은 충분하겠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투자자들의 선별적인 투자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펀더멘탈에 이슈가 있는 기업들은 금리 스프레드가 크게 벌어져, 올해보다 더 극명하게 수요예측 결과가 갈릴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