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조단위 대기업 구조조정 거래 봇물…대형 PEF 인수금융 영업 예의주시
입력 2024.12.20 07:00
    대기업 팔고, 대형 PE가 받아주고…구조조정發 M&A 분주
    SK스페셜티, CJ 바이오, 롯데렌탈 등 예고된 거래만 10조
    시장 어수선해도 내년 인수금융 수요는 기대감 큰 분위기
    자본비율 관리, 공개매수 분쟁 등 영업지형 변화에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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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시장 전반이 어수선한 가운데 내년 초부터 조단위 인수합병(M&A) 거래가 쏟아질 예정이다. 대기업들이 구조조정 작업에 속도를 내면서 이를 받아 가기 위한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들과의 매칭 작업이 한창인 덕이다. 연말 진행 중인 거래들만 합쳐도 10조원을 훌쩍 넘기는 만큼 인수금융 시장에서도 영업지형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올해 인수금융 시장은 호황기였던 2021년에 버금가는 규모로 집계됐다. 눈길을 끌던 대형 거래가 번번이 좌초하며 긴장을 늦추기 어려웠지만 시중금리가 5%대로 떨어지며 늘어난 리파이낸싱(차환)·리캡(자본재구조화) 수요가 제때 빈자리를 채웠다. 인베스트조선 집계상 10위권 이내 기관들은 은행·증권을 가리지 않고 조단위 주선 실적을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초 비상계엄 사태로 재차 시장 경색 우려가 커지는가 했으나 이내 내년 업황을 낙관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자산 재배치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대기업과 투자 실적을 확보해야 하는 PEF 사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풍족한 일감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에코비트 거래 종결을 코앞에 두고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엔 눈앞이 캄캄했지만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며 "올 한 해 출자확약서(LOC)를 끊어주고도 무산된 거래가 많아 허탈한 적이 많았지만 내년 예정된 빅딜이 많기 때문에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 업계에 따르면 이미 SK㈜와 한앤컴퍼니가 SK스페셜티 매매계약 체결을 코앞에 두고 있다. SK스페셜티는 연초부터 그룹 리밸런싱(사업 조정)을 위한 핵심 자산으로 꼽혀 왔다. 동종 산업인 효성화학의 특수가스(NF3) 매각 작업이 부침을 겪었던 것과 별개로 지난 9월 이후 기존 계약서 검토부터 구체적인 실사 작업이 꾸준히 이뤄져 온 것으로 확인된다. 지분 일부를 SK㈜ 측에 남겨두는 구조인 만큼 거래금액은 4조원 이하일 것이란 시각이 많다. 이번 거래에서만 2조원 가까운 신규 인수금융 수요가 예상된다.

      롯데그룹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롯데렌탈 경영권 지분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전격적으로 체결했다. 롯데렌탈 지분 56.2% 예상 매각 금액은 약 1조6000억원이다. 투자은행(IB)을 위시한 자문 업계 전반에서도 롯데그룹이 연말 인사 이후 구조조정 작업에 대한 기조를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추가적으로 내놓을 매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어질 거래까지 감안하면 역시 조단위 인수금융이 필요할 전망이다.

      최대 6조원 규모가 거론되는 CJ제일제당의 바이오사업부(그린바이오) 매각 대금까지 감안하면 내년 초 거래 규모만 10조원 안팎에 달한다. 단순히 거래대금 50% 수준 담보인정비율(LTV)을 적용해도 4조~5조원 규모 대출이 필요한 셈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정국이 불안한 때다 보니 대기업들도 자산 정리에 속도를 내자는 입장이고, 올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대형 PE들도 갈증이 심한 상황"이라며 "사업 부진에서 비롯된 이 둘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M&A 시장 전반에 물이 들어차는 구조가 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매물을 받아줄 대형 PE에 대한 인수금융 영업지형 변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미 시장에선 성사를 앞둔 위 거래들에서 어떤 금융사가 주선 역할을 맡을지 의견이 분분하다.

      통상 PE들도 더 좋은 거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금융기관을 접촉하지만 그간 전적에 따라 특정 기관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거래 규모가 커지면 단독으로 주선 작업을 꾸리기 힘들기 때문에 일찌감치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분위기가 전해진다. 대기업 매물에 눈독을 들이는 대형 PE들은 내년에도 회수 실적을 확보하려 기존 보유 포트폴리오에 대한 리캡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은행권 전반이 보통주자본(CET1) 비율 관리에 비상이 켜진 것도 변수다. 인수금융 자산에 대한 위험가중치(RWA)가 크게 높은 것은 아니나, 만기가 긴 텀론을 새로 담기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실제 하반기 들어 인수금융 시장에서 증권사들의 존재감이 시중은행보다 높아지기도 했다.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 방식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면서 대형 PE와 대기업 사이 영업전선이 나누어지는 양상도 관측된다. 양측 분쟁에서 어느 쪽에 가담했느냐를 두고도 물밑 신경전이 적잖게 벌어졌다. 실제로 주선 기관 사이에선 지난달 있었던 MBK파트너스의 연차총회 참석 여부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어느 정도 잠재 원매자를 특정한 후 매각 작업에 나서고 있고, PE들도 저마다 돈독한 금융사 윤곽이 잡혀 있어서 당장 성사를 앞둔 거래에서는 주선 영업 성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라며 "그러나 당장 은행권 분위기나 고려아연 분쟁과 같은 시장 내 변수를 감안하면 영업지형 변화가 크게 일어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