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에 꺼내든 이복현의 칼…부동산을 넘어 PEF로 향한다?
입력 2024.12.23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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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금융감독원이 주재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대표급 관계자 간담회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운용사 12곳 CEO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금감원은 수차례 일정을 변경하면서까지 간담회를 강행했는데, 모두가 참석을 예상했던 이복현 금감원장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함용일 부원장(자본시장·회계)과 서재완 부원장보가 자리를 대신했다.

      이 원장의 부재(不在)가 그 원인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간담회 분위기는 나름 ‘화기애애(?)’ 했다고 한다. 함 부원장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토론을 시작했는데, 각 운용사 CEO들은 PEF의 역할에 대해 여느때보다 적극적으로 대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쩌면 모든 피감독기관을 향해 칼을 휘두르던 검사 출신 이 원장과 비교해, 자본시장과 관련 업계의 생태를 그나마 잘 듣고 이해 할만한 정통 관료에 대한 부담감이 적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함 부원장이 준비했던 모두 발언을 요약하면 ▲비교적 단기 수익 창출이 목표인 PEF가 기업의 장기 성장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단 지적이 제기되고 ▲PEF가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대규모 타인 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수 있단 시각도 있으며 ▲PEF의 경영권 분쟁 참여, 소액주주와의 이해상충 등의 운용 행위가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정도이다.

      외부의 말을 빌렸지만 사실 금융감독원과 이를 직접 통제하는 이복현 원장의 현실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게 중론이다.

      한국의 사모펀드는 자본시장을 넘어 재계에 미치는 영향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 오랜 기간 뿌리를 내린 소위 ‘재벌’의 지위마저 위협하는 형국에서 감독 당국 차원에선 나름의 역할을 해야겠단 판단도 깔려있었을 것이다. 금감원으로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감독의 사각지대'에 대형 자본, 즉 PEF가 활약하고 있단 인식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사정권 안에 들여놓겠단 의지로도 읽힐 수 있다.

      일각에선 올 한 해 MBK파트너스가 수면위로 드러낸 PEF와 재벌 기업간의 갈등에서 촉발해, 금감원이 MBK를 비롯한 대형 PEF를 향해 ‘경고성’ 메시지를 던진 것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올해는 이복현 원장을 위시한 금감원의 칼이 부동산으로 향했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의 부실을 찾아내기 위해 전 금융계열사들이 보유한 사업장 평가를 실시했다. 시행업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주요 금융기관들은 임직원의 성과급까지 손을 댔다. 상반기 금감원의 활동이 부동산에 몰리면서 다른 부문들에 대한 금감원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졌다.

      금감원의 새로운 아젠다(Agenda)가 필요한 상황. 이복현 원장이 PEF 운용사 대표급 인사들을 불러모은 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직전이었다. 탄핵 정국 속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공직자들의 움직임과 비교하면 상당히 눈에 띄는 행보이자, 자칫 정치적 활동으로도 비쳐질 여지가 있었다.

      PEF 운용사들은 이미 긴장상태이다. PEF를 향한 적대감(?)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으나 주요 운용사들을 향한 수시 검사가 진행될 수 있단 불안감이 팽배하다. 금감원의 입장과는 별개로 대형 PEF들이 감독당국의 사각지대에서 활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금융지주, 은행과 같은 제도권 금융기관들과 같이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금감원의 행보에 예의주시하는 형국이다.

      금감원의 군기잡기가 PEF의 투자 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지는 좀 더 지켜봐야한다. 

      사실 내년도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만한 대기업을 꼽기는 어렵다. 올 한해 돈을 잘 번 기업도 몇 없을 뿐더러, 국내 정치상황의 불안정성은 환율이란 변수를 만들어 내며 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켰다. 이런 상황을 기회삼아 달러를 보유한 외국계 운용사들은 한국 시장에 발빠르게 진출하기 시작했고, 지난 수년간 드라이파우더를 비축한 우리나라 운용사들 역시 M&A 시장의 주체로 등장할 채비를 하고 있다. 국내외 PEF만 눈에 띄는 활동을 펼칠 것이란 의미와도 같다.

      이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금감원이 PEF 운용사들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는 점은 단순히 사정권 안에 들이겠단 의도를 넘어, 감독 당국 차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단 의지로도 비쳐질 가능성이 크다.

      이복현 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은행권과 금융지주 때리기를 시작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은행 만능주의’ 기조를 만들어 냈다. 정책적 방향성이 정해지면, 은행들은 일사분란하게 알아서 움직여줬고 국가적 위기상황(ex. 부동산PF 위기설)이라 불리던 사태에선 은행들이 제1의 해결 주체로 등장했다. 은행을 넘어 우리나라 거의 모든 금융기관들이 은행에 준하는 리스크 관리를 주문 받는 상황은, 이복현 원장 입장에서만 본다면 임기내 이뤄낸 소기의 성과로 볼 수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출범 직후 초대 금융위원장이 된 최종구 전 위원장은 "우리나라 PEF는 기업 사냥꾼이란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면서도, "비올 때 우산을 가져다 주는 성공사례가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이후 쏟아진 기업구조혁신 방안에선 PEF가 금융지원,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2024년, 이복현 원장이 PEF를 수면 위로 재차 끌어내고 있는 상황은 내년이면 한국시장에 도입한지 20주년을 맞는 PEF 운용사들엔 기회로, 반대로 큰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 중의 복심으로 꼽히는 이복현 원장의 거취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한다. 만약 정권이 교체한다면 금감원의 현재 기조 역시 유지할 수 있을진 장담할 수 없다.

      탄핵 정국에 자본시장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점임에도 이 원장은 금감원 국장급 인력 99%를 교체했다. 임기 만료를 반 년 앞둔 상황에서 친정 체재를 다지기 위함인지 아니면 후임을 염두에 둔 인사인지는 두고봐야 한다. 그러나 6개월이란 기간은 PE시장에 영향력을 주기엔 충분한 시간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 이복현 원장의 행보를, 힘을 잃어가는 용산과 소수 여당이 아닌 거대 야당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