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가 더 이상 '엑시트'를 노리지 않는다?
입력 2024.12.23 07:00
    취재노트
    "캐리는 꿈도 안 꾸고, 운용보수 늘리자"
    '실탄 쌓인' 대형 PEF들은 "일단 딜부터"
    사는 건 쉬워도, 파는 건 어려운 시장에
    '바터 거래' 성행…기업가치 인정 논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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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국내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PE를 포함해 대형 PE들을 보면 더 이상 ‘엑시트’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듯합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캐리(Carried interest) 생각을 버린 지는 오래고, 운용자산(AUM) 규모를 키우면 거기서 나오는 운용보수만 받다가 은퇴하면 된다는 생각들이 많아요."

      최근 만난 한 M&A 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PEF 행보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기업을 사고(Buy), 가치를 제고해(Fix), 되판다(Sell)’의 PEF 비즈니스의 기본 원칙에서 ‘되파는’ 엑시트(투자 회수) 단계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조 단위 ‘대형 딜’을 하는 소수의 대형 펀드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는 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글로벌 시장에서 비교적 한국 시장의 중요성이 크지 않다. 국내 시장에서는 연간 기준으로도 몇 없는 대어인 조단위 딜들도, 글로벌 시장 전체로 보면 미드캡(Mid-cap) 딜 수준이다. 

      게다가 최근 미국 M&A 시장은 활황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2024년 연간 M&A 리포트에 의하면 올해 미국 시장에서 M&A는 202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상승세를 이어왔다. 첫 9개월 동안 미국에서 거래 규모가 2023년 같은 기간 대비 약 21% 증가했다. 

      이렇다 보니 ‘지사’ 중 하나인 한국에서는 사실상 “우리도 딜을 하고 있다” 정도만 보여주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대형 딜을 성사하면 운용 규모가 늘어나고, 거기에서 오는 운용보수만 한 해에 수백억 규모에 달한다. 

      통상 GP들의 운용보수는 1~2% 선에서 결정되는데, 최근에는 자체 제안 후 합의하는 식이 일반적이다. 특히 해외 LP들이 1.5~2% 수준으로 비교적 국내 LP들보다 후한 것으로 알려진다. 조 단위 규모 거래 하나만 성사해도 기존 포트폴리오까지 더하면 ‘꽤 괜찮은’ 운용 보수를 받게 된다. 

      물론 엑시트를 하고 펀드를 청산하고 나오는 어마어마한 인센티브인 캐리가 PE 비즈니스의 꽃으로 불린다. 그런데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리는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고려하기에는 현재 키맨으로 활동하는 파트너 세대의 연령이 '여유' 있지 않다. 파트너 아래의 실무진들은 파트너까지의 길도 막막한데 캐리를 노리는 건 사치(?)라는 시선도 적지 않다. 

      마침 국내 시장도 '돈을 써야 하는' 대형 PEF들이 거래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현재 국내 M&A 시장에서 조단위 딜을 진행할 여력이 있는 곳들은 사실상 대형 PEF들밖에 없다. 대기업들이 카브아웃(Carve-out)으로 내놓는 사업부나, 유동성 확보를 위해 내놓은 계열사 매물을 전략적투자자(SI)들이 볼 여유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다른 그룹이 내놓은 비핵심 사업에 대규모로 투자할 기업은 더욱 찾기 어렵다. 

      최근 홍콩계 PEF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롯데그룹으로부터 롯데렌탈을 '빠르게' 인수한 거래가 대표적이다. 이번 거래에서 어피니티는 롯데렌탈 지분 100% 기준 가치를 2조8000억원으로 인정했고,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보유한 롯데렌탈 지분 56.2%를 1조6000억원에 인수했다. 

      어피니티는 시가 2배 이상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고 롯데렌탈을 인수한 셈이다. 어피니티는 2018년 결성한 60억 규모의 아시아 5호 펀드(Affinity Asia Pacific Fund V) 투자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소진을 서두르는 분위기다. 

      비싸게 사는 건 쉬울 수 있어도, 비싸게 '파는 건' 더욱 어려워졌다. 이러한 환경을 반영하듯 올해 국내 M&A 시장 내 매각 거래에서는 회수 성과를 위한 PEF 간 세컨더리 딜이 부쩍 늘었다. 출자를 받기 위해서는 투자 회수 성적을 내야 하지만, 마땅히 받아 줄 인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평이다. 

      이렇다 보니 PEF 간 거래가 다수 이뤄졌는데 LP들 사이에서는 PEF 간 주고 받는 거래에서 제시된 기업가치를 과연 인정해야 하냐의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은 분위기다.

      물론 PEF 비즈니스에서 엑시트가 어려운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아무리 운용보수가 두둑하다 해도 여전히 딜 성사에 엑시트 가능 여부가 고려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PEF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파이가 커진 만큼 지워지는 책임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시선이 많아지는 가운데, 실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장기적 관점을 가지지 않는 점은 우려해야 할 지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