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올해 연말께 3사 모두 가동률 하락發 적자대열 합류
내년 고객사 물량 감소 우려에 내년 한해 걱정 상당한데
신공장 문제에 IPO까지…향후 2년 고생길 이어질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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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배터리 3사는 내년에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할 전망이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통상 정책·보조금 규정부터 고객사 사정까지 변수가 쌓여가는데 당장은 호재보단 악재가 많아 보인다는 분석이 많다. 내후년쯤 전기차 시장이 회복 구간에 들어갈 것이란 기대도 있지만 슬슬 고객사 중에서 탈락자가 나올 때가 됐다는 걱정도 고개를 들고 있다. 3사 모두 신공장, 상장(IPO) 계약 등 각기 숙제를 두고 고심이 길어지는 모습이다.
최근 전기차·배터리 업계는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 인수위원회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새 행정부의 통상 규제·보조금 정책에 따라 내년 이후 사업 계획이 크게 바뀔 수 있는 탓이다. 실제로 완성차 업체 전반이 내년 필요한 배터리 물량을 특정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파악된다. 고객사 사정에 사업이 좌우되는 배터리 3사로선 내년 실적도 가늠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위시한 전임 행정부 노선을 어떻게 손볼지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관건은 크게 ▲중국을 비롯한 해외 물량에 대한 관세 ▲전기차에 대한 대당 7500달러 판매 보조금 ▲배터리·소재 공급사의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 손질 여부로 나뉜다. 중국 물량은 최대한 막아주되 약속된 보조금, 세액공제는 유지하는 게 최선으로 꼽힌다. 그러나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재무부가 AMPC 잠정 가이던스를 내놓은 게 정확히 1년 전이고, 겨우 두 달 전에 최종안이 나왔는데, 두 달 만에 또 상황이 바뀌게 됐다"라며 "국내 배터리 공급사들은 이미 연초부터 완성차 고객사에 반강제로 보조금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미국 현지 고객사에 더 유리한 방향으로 바뀔 거란 우려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은 전기차 밸류체인의 최전방 수원지로 비유된다. 지난 1년여 동안은 수원지가 마르지 않았는데도 전기차 선호가 떨어지며 캐즘(수요 정체기) 구간으로 불렸다. 이 기간 최후방에 위치한 배터리·소재 공급사들의 가동률은 30~50% 선까지 하락했다. 현재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보조금은 줄고 세액공제를 미국 고객사와 나눠야 할 압박은 커지는데, 내년 주문 물량까지 빠지는 상황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전기차 고객사들의 요구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판매 전망을 그리 낙관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인데, 배터리 3사 입장에선 공장을 세워두면서 고정비 부담을 쳐내는 작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3사 중 가장 보수적으로 생산설비를 굴려온 삼성SDI 역시 이번 분기 자동차전지 부문에서 적자전환할 수 있다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대 시장인 북미나 유럽 모두 수요가 부진한 탓에 고객사가 받아 가는 물량을 줄이고 있는 탓이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은 AMPC 보조금을 반영하고도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 손익분기점(BEP)에 도달하지 못한 SK온을 포함해 국내 3사가 나란히 올 연말께 적자 구간에 들어설 수 있다는 얘기다.
우려대로 내년 물량이 줄어들 경우 이런 상황이 길어지게 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3사 중 폼팩터(제형)나 응용처에서 가장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음에도 공장 운영효율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수요가 확실한 배터리 중심으로 생산라인을 조정해 가동률 하락을 막겠다는 복안이다. 두 달 전 삼성SDI가 국내 울산 공장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마더팩토리 라인 구축에 들어간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LFP 수요가 더 늘어날 것에 대비해 기존 포트폴리오를 계속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사 모두 2026년 양산에 들어가는 신공장을 짓고 있다. 현재 보유한 생산설비도 꽉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장이 더 늘어난다는 얘기다. 내후년까지 전기차 시장이 유의미하게 살아나지 못하면 지금까지 경로를 되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업계 내에서도 내년까지의 부침을 상수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많은데, 내후년 전망에 대해선 시각이 나뉘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시장조사기관 한 관계자는 "막연하게 내후년쯤 전기차 시장이 다시 빛을 보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는데, 테슬라를 비롯해 몇몇 전기차 브랜드를 제외하면 크게 변함이 없을 수도 있다"라며 "그러면 새로 짓고 있는 공장에서 또 막대한 적자가 발생할 수 있어서 거기에 대한 걱정이 크다"라고 전했다.
그룹 내 흑자 계열사와 합병 작업을 치르며 지난 분기 깜짝 흑자를 기록한 SK온도 아직은 안심하기 힘든 구간이다. 내년 초 3사 합병 작업이 마무리되면 자체적인 조달 여력은 전에 비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모회사 수혈, 고객사 대출, 외부 투자자 유치, 계열 합병까지 거의 모든 카드를 꺼내 쓴 만큼 내년에는 배터리 사업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둬야만 한다는 압박이 상당하다. 내년 하반기부터 기업공개(IPO) 작업에 착수해야 하는 점에서도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3사 모두 내년 부침이 극심할 것으로 보이는데 각자 떠안은 숙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보는 시선이 많다. 이미 뒷단 소재 업체들은 기관 투심이 불투명해져서 조달에서 애를 먹기 시작했다"라며 "올해 각사의 대응 성과에 따라서 향후 2년간은 고생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