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3개점이 매출 45% 차지…양극화 심화 여실해
마트도 4년새 14곳 폐점…우선매수권 포기 잇따를듯
부실점포 정리 시기 맞아 반발 약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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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쇼핑이 비수도권 점포들을 대거 매물로 내놓으며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근 유동성 위기설로 인한 시장의 우려가 오히려 대규모 구조조정의 명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정치권의 눈총을 의식해 더디게 진행됐던 구조조정이 이제는 불가피한 선택지가 됐다는 분석이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부산 센텀시티점을 시작으로 지방 소재 백화점과 마트 10여개를 순차적으로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미 지난 6월 롯데백화점 마산점 폐점을 단행했고, 미아점ㆍ건대스타시티점ㆍ상인점ㆍ포항점ㆍ관악점 등도 폐점 또는 매각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쇼핑의 구조조정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될 예정이다. 자가 소유 점포인 센텀시티점ㆍ미아점ㆍ관악점 등은 매각을 통한 자산 유동화를, 임차 점포인 건대스타시티점ㆍ상인점ㆍ포항점 등은 임차 계약 종료 및 중도 해지를 통한 폐점을 검토하는 식이다. 특히 임차 점포의 경우 10~20년 단위의 장기 임차계약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폐점을 결정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매물로 나온 점포들의 실적은 '밑 빠진 독' 수준으로 평가된다. 장부가액 1519억원(토지 857억원, 건물 661억원)의 센텀시티점의 경우 연 매출은 1300억원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다.같은 기간 인근 신세계 센텀시티점은 2조원을 기록했다. 롯데그룹 측에선 2000억~3000억원대 매각을 예상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관심을 보이는 대형 투자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백화점 구조조정은 백화점 업계의 매출 양극화와 무관하지 않다. 올해 상반기 기준 롯데백화점의 상위 3개 점포(잠실ㆍ본점ㆍ부산본점) 매출이 전체의 45% 이상을 차지했다. 31개 점포 중 절반 이상이 장부상 숫자 채우기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잠실점은 올해 처음으로 3조원 매출 달성이 확실시되는 반면, 비수도권 점포 대부분은 연매출 2000억원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결국 효율성 없는 점포들이 우량 점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유통업계 중론이다.
이러한 구조조정 기조는 백화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롯데마트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외형 확장' 대신 '점포 효율화'에 주력해왔다. 양주점ㆍ천안아산점ㆍ의정부점 등 실적 부진 점포 14곳의 문을 닫았고, 2개 점포는 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전환했다. 지난해부터는 권선점과 웅상점 등의 비영업 자산인 옥외주차장에 대한 추가 매각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더해 과거 자산 유동화했던 점포들의 우선매수협상권도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캡스톤자산운용이 보유한 롯데마트 성정점 등 5개 점포(2014년, 5001억원)를 비롯해 코람코자산신탁이 보유한 롯데마트 금천점의 토지 및 건물(2018년, 642억원), 마스턴투자운용이 보유한 롯데아울렛 이시아폴리스점 등이 주 대상으로 거론된다.
앞서 롯데쇼핑은 2023년 10월 KB자산운용이 보유한 백화점ㆍ마트 7곳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포기하기도 했다. 롯데백화점 일산ㆍ상인점, 롯데마트 구미ㆍ고양ㆍ부평ㆍ당진ㆍ평택점 등이다.
오프라인 매장과 함께, 이커머스 부문의 체질 개선도 본격화하고 있다. 롯데온은 최근 2차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연간 1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최소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올해 3분기 기준 매출은 845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0.8%에 그쳤다. 지난해까지 금융권 도움으로 버텨왔으나, 이마저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다.
롯데쇼핑의 구조조정은 계열사 정리로도 이어지고 있다. 3월 수원역쇼핑타운 흡수합병에 이어 이달에는 롯데인천타운 합병도 추진했다. 다만 인천 구월동 사업 진전이 더딘 상황이라 실질적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다.
업계는 이번 구조조정이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고 평가한다. 그간 정치권과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해 점진적으로 진행하던 구조조정이, 최근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지면서 오히려 과감한 자산 정리의 명분을 얻게 됐다는 분석이다.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 국면으로 시장의 이목이 정치권에 쏠린 상황도 구조조정 가속화의 기회가 됐다.
다만 매각 작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롯데쇼핑은 20여개 점포를 묶어 유동화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결국 개별 매각으로 선회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비수도권 매물의 경우 더욱 난항이 예상된다. 롯데백화점 동래점의 경우 2016년 2704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1990억원까지 하락했다. 포항점도 연 매출이 1733억원에 그치는 등 지방 점포들의 실적 부진이 뚜렷하다.
한 대형운용사 관계자는 "폐점 후 밸류애드를 시도하려 해도 현재 공사비가 너무 높은 상황이라 진행하기 쉽지 않다"며 "좋은 위치의 자산도 분양 리스크 때문에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는데, 수익성이 불투명한 비수도권 위주의 매물을 굳이 '패키지 딜'로 인수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향후 2~3년간 진행될 구조조정의 성패는 롯데쇼핑의 미래를 좌우할 전망이다. 당장 연말 자산 재평가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부실 자산 정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부채비율이 190%에 달하는 상황에서 자산 가치 하락은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롯데쇼핑은 프리미엄 쇼핑몰 '타임빌라스'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2024년 10월 수원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13개의 프리미엄 쇼핑몰을 선보일 계획이다. 7조원을 투자해 연간 매출 6조6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시장의 시선은 따갑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구조조정과 신사업 투자의 균형이 중요하다"면서도 "현 상황에서 7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자체적인 구조조정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롯데그룹 입장에선 당장의 매각 대금보다 부실 자산을 털어내는 것 자체가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며 "정치권의 관심이 멀어진 만큼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