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2차 중재도 FI 판정패' 주장…아전인수 전략만 남은 신창재 회장
입력 2024.12.27 07:00
    Invest Column
    1차 중재 신 회장 판정승…'가격 산정 근거 없다'
    2차선 '가격 산정 않을 시 강제금' FI 손들어줘
    신 회장 'FI 가격 퇴짜' 언급에 불복 가능성 피력
    FI 한시름 놨지만 이후 절차에서도 이견 불가피
    평판위험 신 회장, 향후 자금 조달 때 난항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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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 2012년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는 IMM PE, EQT파트너스(전 베어링PEA),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컨소시엄을 꾸려 교보생명에 1조2000억원을 투자했다. 컨소시엄은 투자 후 3년 안에 교보생명이 상장하지 않을 경우 지분을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게 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확보했다. IPO가 이뤄지지 않자 컨소시엄은 2018년 풋옵션을 행사하고 이듬해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중재를 신청했다.

      당시 재무적투자자(FI)들은 신창재 회장이 주당 41만원에 주식을 사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중재판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풋옵션의 유효성과 신 회장의 주주간계약 위반은 인정했지만 풋옵션 행사 가격이 유효하지 않다고 봤다. 당시 신창재 회장은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는데, 이 경우 가격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 주주간 합의가 없었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FI 입장에선 중재에서 신창재 회장의 의무 위반과 풋옵션의 유효성을 인정받고도 실효적인 권리 행사 수단은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 됐다. 국제중재는 단심제로 이뤄지며 곧바로 확정 판결력을 가지기 때문에 FI가 구제책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있었다. '합의의 틈새'를 파고든 신창재 회장 측의 '판정승'이란 평가가 따랐다.

      교보생명 FI들은 2022년 2차 중재에 들어갔다. 신창재 회장이 가격을 내도록 하는 것이 주요 청구사항이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최종 ICC 중재판정부는 신 회장이 FI의 풋옵션 행사가격을 산정할 감정평가인을 선정하고 평가보고서를 제출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아울러 신 회장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FI에 하루당 20만달러의 간접강제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FI는 '승소' 선언을 했다.

      2차 중재 결과에 따라 신창재 회장은 평가기관을 통해 산정한 가격을 FI에 제시하면 된다. 신 회장과 FI 제시 가격(주당 41만원) 격차가 10% 이상 날 경우, FI는 제3의 평가기관 3곳을 신 회장에게 제시할 수 있다. 신 회장이 이 중 1곳을 선정해 도출한 가격과 FI 투자원금(주당 24만5000원) 중 높은 금액으로 풋옵션 행사 가격이 정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창재 회장이 평가법인 선정에 들어가면 이후 풋옵션 가격 산정까지 기계적으로 진행된다. 법리적인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됐음에도 FI 쪽에서는 불안감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다.

      교보생명 측은 불복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2차 중재의 평가기관 선임 결정은 1차 중재의 기판력을 위반한 것이며, 신창재 회장이 중재판정 취소 등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같은 주장은 2차 중재 내내 신창재 회장 측이 피력했음에도 판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핵심은 1차와 2차가 '같은 재판'이냐인데 판정부는 별개라고 봤다. 1차는 FI가 원하는 가격대로 풋옵션을 행사하겠다는 취지였고, 2차는 신 회장이 가격 보고서를 제출하게 해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창재 회장이 불복하지 않더라도 상황은 간단치 않다. 교보생명은 2차 중재 결과에 대해 판정부가 FI가 제시한 풋옵션 공정시장가치(FMV)를 '퇴짜'놨다고 했다. FI가 요구한 금액이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그러나 간접강제금까지 부과하며 신창재 회장의 행동을 촉구한 것을 보면 판정부는 FI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신창재 회장이 가격 산정에 나서더라도 이견이 클 수밖에 없다. 결국 제3 평가사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도 시간이 길게 끌릴 수 있다. IPO를 미루고, 가격도 제시하지 않은 전례가 있는만큼 신 회장이 '버티기 전략'에 들어가면 손 쓸 방도가 마땅찮다는 것이다.

      FI 쪽에선 어느 경우든 투자 원금이 마지노선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교보생명은 그보다 낮아질 수 있다고 보는 상황이다. 제3 평가기관의 산정 가격과 원금을 두고 비교해야 하는지, 아니면 제3 평가기관의 가치로 그대로 확정되는지 이견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신창재 회장은 제3 평가기관이 제시하는 가격이 풋옵션 행사가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FI 풋옵션 행사 당시 상장 공모 예정가(18만~21만원), 작년 자사주 매입 단가(19만8000원) 등을 근거로 행사가가 원금보다 낮을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경영자가 자기 회사의 가치를 깎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셈이다.

      교보생명은 과거 안진회계법인이 FMV 산정 과정에서 FI와 부정공모 혐의로 기소돼 논란이 됐다고 했다. 아울러 회계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수년간의 소송으로 논란이 된 사안에 평판 리스크를 감수하고 나설 회계법인이 있을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제3 평가기관 걱정이라기 보다는 압박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줄다리기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적 움직임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애초 신창재 회장이 원금이라도 갚겠다는 의지가 있었으면 여기까지 왔을 일도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중재 결과까지 나온 마당에 신 회장과 FI가 직접 만나 합의점을 찾기도 쉽지 않을 거란 분석이다.

      신창재 회장이 FI 지분을 인수해야 할 경우 어떻게 자금을 마련할지 미지수다. 핵심 재산은 직접 가지고 있는 교보생명 지분 33.8%인데, 직접 강조한대로 이 지분 가치는 상당히 낮아져 있다. 최근 업황 악화, 규제 강화, 금리 인하기 돌입 등 악재가 많아 조단위 자금의 담보로 부족할 수도 있다. 최근엔 주가수익스왑(PRS) 등 자산의 가치 대부분을 인정하는 구조화상품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모회사의 상환 보장 등 신용보강 장치가 필요하다. 10년 가까이 평판 위험에 노출된 신창재 회장이 활용할 만한 카드인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