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헤지 비용에 신음하는 상장리츠…배당금의 절반 '날릴 판'
원-달러 환율 1460원 돌파에 환헤지 정산금 부담 상당한 분위기
업계 "국토부·부동산원 경직된 규제가 비용 부담 키웠다" 지적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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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화가치가 급락하면서 해외자산을 보유한 상장리츠들의 환헤지(hedge;위험회피) 비용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일부 리츠의 경우 연간 배당금의 절반 수준을 환헤지 비용으로 지출해야 해서 경영상 압박이 상당하다는 평가다.
이같은 상황은 국토교통부의 환헤지 권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다소 일방적이고 경직적인 규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장리츠의 환헤지 비용 부담이 막대한 만큼 이를 경감하기 위한 유연한 정책 지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JR글로벌리츠의 새해 2월 만기 원-달러 환계약 규모는 1억2000만달러(한화 약 1650억원)로 알려졌다. 약정 당시 환율은 1197.18원이었으나, 최근 환율이 1460원을 돌파하면서 발생하는 환헤지 비용은 2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JR글로벌리츠는 이를 위해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지만, 그간 환율 상승으로 소요된 비용만 10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재무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 자산을 보유한 KB스타리츠도 예외가 아니다. KB스타리츠는 지난 2022년 벨기에 노스갤럭시타워에 4500억원가량을 투자했는데, 새해에 만기가 도래하는 원-유로 환헤지 계약이 부담이다. 2년간 환율이 1유로당 1300원에서 1500원까지 상승하며 원화 가치가 20% 이상 하락했고, 이로 인해 환헤지 손실금도 크게 늘어났다. 2023년 연간 배당금이 360억원이었던 KB스타리츠는 그 절반이 넘는 200억원을 환헤지 비용으로 지출해야 하는 처지다.
이외에도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 미래에셋글로벌리츠 등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상장리츠들도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환헤지 비용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수료 정산 시기는 아직 남았지만, 현재 환율 수준이 지속될 경우 정산금이 배당금에 맞먹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래에셋글로벌리츠의 경우 환헤지 계약 만기가 2026년으로 다소 여유가 있지만, 당시 설정 환율이 1200원 수준이어서 부담이 크다는 분석이다.
환헤지는 운용사가 해외투자 시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을 막기 위해 미리 환율을 고정하는 일종의 '환율 보험' 제도다. 예컨대 미국 부동산에 투자한 운용사가 달러 가치 하락에 대비해 사전에 달러 매매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계약 만기가 도래하면 이를 갱신(롤오버)해야 하는데, 계약 시점보다 환율이 상승할 경우 추가 정산금을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자금 마련이다. 상장리츠는 수익의 90%를 배당으로 지급해야 하는 특성상 여유자금이 많지 않다.
여기에 최근 리츠업계 주가마저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회사채 발행도 신용등급 A 이상인 곳이 많지 않아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마스턴프리미어리츠의 경우 환헤지 정산금 마련을 위한 유상증자가 어려워지자 마스턴투자운용으로부터 직접 차입에 나서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은 국토교통부와 부동산원이 리츠 영업인가 심사 과정에서 환헤지를 권고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달러·유로화 가치 하락에 대비해 상장리츠들의 투자금과 배당금에 대한 환헤지를 유도했으나, 오히려 원화가치 급락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 부담이 발생하면서 리츠업계의 재무적 압박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JR글로벌리츠, KB스타리츠, 마스턴프리미어리츠,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는 해외 투자금 전액에 대해 환헤지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 인해 얼마를 추가로 지출해야 할지는 미지수다.
이에 리츠업계에서는 환헤지의 실효성을 두고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환율 급등으로 수백억원대 비용이 발생하면서 불만이 고조된 상황이다. 특히 당국이 리츠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경직된 규제를 적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공제회나 연기금의 투자 전략을 예로 들며 환헤지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2014년부터 단계적으로 환헤지 비율을 줄여 2018년부터는 환율 변동에 그대로 노출하는 환오픈 전략을 유지해왔다. 미국 달러, 유로화, 엔화 등 여러 통화에 분산 투자하는 만큼 높은 헤지 수수료를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헤지 효과가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리츠도 이와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만기가 없는 투자구조인 리츠는 장기적으로 환율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또한 해외 자산 투자 시 분산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있어, 유럽, 미국 등 각지의 자산을 매입한다면 별도의 환헤지 없이도 자연스러운 위험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환헤지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리츠가 보유 자산을 장기 운용할 수 있더라도 결국 매각 계획이 있는 만큼, 환헤지를 통해 자산 가치를 보전하고 매각 시점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부동산원 입장에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환율 하락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 리스크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환헤지 여부를 운용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100% 환헤지를 일괄 권고하는 현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래에셋글로벌리츠 등 일부 리츠가 부동산원을 설득해 환헤지 비율을 50%로 낮추는데 성공했지만, 대부분의 상장리츠는 여전히 100% 환헤지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ETF 시장은 환헤지와 환노출 상품을 모두 상장해 투자자가 환율 변동에 따른 수익률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환노출 상품을 매수해 환차익을 추구하는 것도 투자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며 "하지만 부동산 부문은 당국의 경직된 환헤지 정책으로 인해 급격한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상장 리츠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당국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급격한 원화 약세를 예상하지 못했던 시점에는 환헤지 계약 비중을 높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경직된 규제로 인해 상장 리츠들이 수백억원에서 천억원에 달하는 불필요한 헤지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장기 투자가 가능한 리츠의 특성을 고려해 환헤지 비율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그 책임을 상장리츠에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때라는 의견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