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변수로 떠오른 집퉁투표제 도입 여부
법원 가처분 인용에 따라 분쟁 장기화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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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자본시장의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결국 해를 넘겨 결론이 난다. 분쟁이 수면 위로 드러난지 100여일 간, MBK를 위시한 영풍그룹과 최윤범 회장을 중심으로 한 고려아연은 치열한 공방을 벌여왔다. 양측 모두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배수의 진'을 치고 내년도 주주총회를 준비하고 있다.
선대부터 이어온 동업 관계가 무색하게 영풍의 장형진 고문과 최윤범 회장 측은 갈등을 봉합할 겨를도 없이 분쟁 초기부터 비방전을 시작했고 이를 통해 서로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났다. 다행히(?) 일부 투자자들은 고려아연을 통해 막대한 차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재벌과 대형 자본의 전쟁을 지켜보는 다수의 투자자들의 피로도가 점차 쌓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 차례 이어진 공개매수를 통해 MBK·영풍 연합은 의결권 총수(자사주 제외) 기준 46.7%까지 확보했다. 최윤범 회장 측은 우호지분을 모두 합쳐 40%가량의 지분을 모았으나, 단순 지분율 기준으론 MBK·영풍 연합에 열위한 건 사실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기관투자자들 표심의 향방은 모호하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MBK·영풍 연합이 승기를 잡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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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고려아연 측이 꺼낸 카드 '집중투표제'의 도입 여부가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집중투표제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주식 1주당 선임하려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해 후보자 한 명 또는 여러 명에게 의결권을 집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집중투표제가 도입하지 않은 기업은 과반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의 표결만으로도 원하는 이사 선임이 가능하지만,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주식 수가 적은 주주라도 의결권을 집중적으로 행사해 추천 인사를 이사로 선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위해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기업의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제도란 의견이 공존한다.
일단 고려아연 측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주총 결과 역시 다시 미궁에 빠지는 모습이다.
MBK·영풍 측은 새해 초 법원에 안건(집중투표제) 상정금지 가처분 신청을 계획하고 있다. 최윤범 회장이 사내이사로 있는 유미개발을 통한 주주제안 자체가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집중투표제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목적과 배경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이 만약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다면 MBK·영풍 쪽으로 판세가 기울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현재 안건 그대로 주총에 상정한다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이번에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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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매수 과정의 적법성 ▲일반공모 유상증자 논란 ▲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의 내부자료 이용 의혹 ▲MBK파트너스의 국적 논란 등 양측은 분쟁 과정에서 번번이 부딪혔지만 결국 분쟁을 주총까지 끌고왔다.
결과적으로 남은 쟁점은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들이 어떤 이사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가로 귀결한다.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에 따라 승자독식 구조가 될지, 아니면 적과의 동침 구조가 이어질 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이번 주총에선 향후 고려아연 경영진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MBK·영풍 측은 총 14명(기타비상무이사 2명, 사외이사 12명)을 추천했다. 강성두 영풍 사장과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을 포함해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 김명준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등이 포함했다.
고려아연 측 역시 7명의 사외이사를 추천한 상태다. 이상훈 전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대표, 제임스 앤드류 머피(James Andrew Murphy) 올리버 와이만(Oliver Wyman) 선임 고문, 김경원 세종대 경영경제대학 석좌교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물론 특별결의 요건을 채워야 하는 정관변경 안건(집중투표제 도입)이 통과할지 여부, 그리고 이사의 수를 제한하는 안건이 통과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 하다. 이에 따른 경우의 수, 그리고 손익계산서도 확정하긴 어렵다.
집중투표제 안건이 통과하면 이사의 수를 19명으로 제한하는 안건의 표결이 연이어 진행된다. 만약 이사의 수가 19명으로 제한된다면 집중투표를 통해 7명의 이사를 선임하게 되고, 이사의 수 19명 제한 안건이 부결된다면 이사의 수를 확정한 후 정해진 수만큼 이사를 표결을 통해 이사 선임을 확정한다.
반대로 집중투표제 안건이 부결한다 하더라도, 이사의 수를 19명으로 제안하는 안건의 표결이 진행된다. 이사의 수의 제한이 생긴다면 이사 수 19명을 전제로 모든 후보자를 일괄 상정해 표결을 진행하고, 이사의 수 제한 안건이 부결되면 이사의 상한이 없음을 전제로 각각 후보자에 대한 보통결의 방식으로 표결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