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3세 전면에 나선 보험사들, '본업' 흔들리는데 너도나도 '신사업'
입력 2025.01.06 07:00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장남 상무 승진
    한화생명·현대해상에 이어 교보생명도 3세 전면에
    다들 하나같이 AI·ESG·해외사업 등 신사업 맡아
    본업 경쟁력 떨어지는데 트랜디한 신사업에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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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보험사 ‘오너 3세’들이 속속 고위 경영진에 합류하고 있다. 신사업을 통해서 본격적인 경영에 나서는 모습이다. 디지털, 해외사업 등에 주력할 것으로 보이는데 금리 인하기 건전성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하는 시점에 전면에 나서게 됐다. 

      다만 얼마나 성과를 낼지 미지수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보험사들이 자본건전성 확보와 본업 경쟁력 강화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인만큼, 오너 3세들이 사업의 근간인 영업과 리스크 관리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장남인 신중하 상무는 최근 입사 10년 만에 상무로 승진했다. 1981년생으로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외국계 IB인 크레디트스위스 서울지점에서 근무하다 2015년 교보생명 자회사인 KCA손해사정에 입사했다. 2022년 교보생명 차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그룹디지털전환 지원담당, 그룹데이터전략팀장을 지냈다. 이번에 상무로 승진하면서 인공지능(AI) 분야 등을 맡게 된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이번 신중하 상무 승진은 일반 임직원과 동일한 인사원칙이 적용됐다"며 "본격적인 경영승계 포석이라기보다 신창재 의장의 인사원칙에 따라 착실하게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현대해상은 2023년 정몽윤 현대해상 장남인 정경선 전무가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로 입사했다. 정 전무는 입사 전엔 비영리법인 루트임팩트, 사회적 가치 투자사 HGI 등을 설립한 바 있다. 현대해상에선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주도하고, 디지털 혁신을 맡고 있다. 

      오너 3세 중에선 한화생명의 김동원(39) 사장이 가장 먼저 부각됐던 바 있다. 김 사장은 1985년생으로 미국 예일대를 졸업하고, 2014년 한화생명에서 디지털 팀장으로 입사한 후 전사혁신실 부실장, 디지털혁신실 상무, 해외총괄 겸 미래혁신총괄,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 겸 전략부문장, 최고디지털책임자 등을 거쳤으며, 지난해 2월 최고디지털책임자 부사장의 최고글로벌책임자(CGO) 사장으로 승진한 바 있다. 

      한화생명은 국내 보험사 중에선 처음으로 미국 현지 증권사 벨로시티(Velocity Clearing)를 인수했다. 미국에서 다양한 투자 기회를 찾아 장기적 수익성을 강화하겠다는 복안인데,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김동원 사장의 의중이 상당부분 반영된  거래라는 후문이다.

      이들 3세들이 담당하는 업무는 하나같이 디지털, 해외사업, ESG 등 신사업 분야다. 모두 해외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고, 젊은 세대인 만큼 강점을 활용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다만 보험업계에선 본업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오너 3세’가 하나 같이 ‘트랜디’한 신사업에만 매달리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적지 않다.

      교보생명의 경우 신창재 회장과 FI(재무적 투자자)간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 하고 있으며, 최근 2차 중재재판 결과가 나오면서 풋옵션 처리가 현안 문제로 부상한 상황이다. 여기에다 회사의 기초체력도 떨어지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교보생명의 킥스비율은 161.2%로 3사 중 가장 낮았다. 지난해 말 대비 32.6%포인트 줄어든 수치로 빅3 보험사 중에서 감소폭이 가장 컸다. 

      교보생명은 경영권 변화 및 건전성 문제가 당면과제인 상황에서 신사업에 힘을 쏟기는 쉽지 않다는 견해가 나온다. 이런 와중에 인공지능 등 신사업이 얼마나 회사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할지는 미지수다. 

      한화생명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최근 조단위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다. 연말에 8000억원, 내년 초엔 최소 5000억원 규모의 추가 조달 준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킥스비율이 164.5%로 떨어지면서 발빠르게 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미국 증권사 인수 등 해외사업을 확장하는 듯 보이지만, 당장 건전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현대해상에 대해선 증권사의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DB금융투자는 현대해상은 “당분간 배당을 기대하기 어렵다”란 의견을 내며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보유’로, 목표주가를 4만2800원에서 2만6900원으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이병건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현대해상의 경우 금리하락으로 인한 기타포괄손실 확대와 해약환급금준비금 증가로 인해 올해에는 배당을 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연말 지급여력비율(K-ICS, 킥스)은 150% 내외까지 하락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내다봤다.

      결국 회사를 경영하게 된다면 보험업은 영업과 리스크 관리가 핵심인데 해당 업무에 대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 상황이 ESG나 해외사업 확장에 신경을 쓸 상황은 아니란 설명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오너 3세들이 경영진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경영에 나서기 시작했다”라며 “보험업은 안정성이 중요한 보수적인 사업인데 3세들은 너무 신사업에만 집중하는 것 아닌가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