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가 뻥튀기' 사라질 올해 IPO 시장…과열 막을 '제도 개선이 우선' 목소리도
입력 2025.01.07 07:00
    파두 사태로 '교훈' 얻은 공모시장
    '공모가 욕심' 부리기 어려운 상황
    내년 나올 '대어'들 몸값 눈치보기
    금융당국 눈초리도…"정상화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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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급속히 냉각됐던 기업공개(IPO) 시장의 투자 심리가 올해부턴 다소 나아질 전망이다. 발행사들이 '몸값 욕심'을 내려놓기 시작한데다, 금융당국도 본격적으로 ‘뻥튀기 상장’ 등 공모가 산정 이슈에 칼을 빼 들고 있어서다. 

      지난해 자취를 감췄던 공모 규모 조 단위 '빅딜'들도 잇따라 상장을 준비하며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다만 공모주 시장이 이전같은 과열 양상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면 초일가점 등 폐단이 드러난 제도 먼저 손질해야 할 거란 지적도 적지 않다. 

      3일 증권가에 따르면 올해는 연초부터 IPO 빅딜들이 예고돼 있다. 초대형 대어인 LG CNS를 필두로 DN솔루션즈, 케이뱅크, SGI서울보증보험, 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이 상반기 공모시장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 IPO 시장은 급랭한 바 있다. 지난해 상장한 기업 중 ‘더블’ 이상 시초가를 달성한 기업은 21곳인데, 이 중 12월에 상장한 기업은 벡트와 파인메딕스 정도다. 연이은 고평가 논란과 상장 첫날 주가 하락 등으로 공모시장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다. 투자자들도 사실상 몸값 욕심을 내기 어려워진 상황이라는 평가다.

      올해 공모를 예정하고 있는 발행사들도 이 같은 분위기를 충분히 인지하는 모양새다. LG CNS의 경우 당초 KB증권 등 상장 주관사단과 상장 후 시가총액 7조원을 목표로 공모구조를 짰지만, 지난달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몸값 눈높이를 6조원으로 낮췄다.

      LG CNS는 계엄 사태와 환율 급등에도 불구, 일단 이달 예정된 공모 절차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자칫 일정을 잘못 미뤘다가 기다림이 기약없이 미뤄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까닭이다. LG CNS는 이미 2022년 이미 한차례 상장을 연기한 적이 있다.

      SGI서울보증 역시 3월 내 공모 완주를 목표로 신고서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23년 한 차례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했던 사례를 교훈삼아 공모가 극대화보다는 연내 상장 완료에 초점을 두는 모습이다.

      최근 IPO 시장은 '이익 극대화'보다 '상장 완주'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달에 상장한 엠앤씨솔루션의 경우에도 공모희망가 밴드(8만~9만3300원) 하단보다도 19% 낮은 6만5000원에 공모가를 확정하며 일단 상장 완료에 무게를 뒀다. 

      컬리(구 마켓컬리) 사례가 반면교사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때 4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던 컬리의 최근 기업가치는 1조원 아래로 급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투자자인 앵커 PE는 2021년 컬리에 4조원 밸류에이션으로 2500억원을 투자했고, 이어 2023년 2조9000억원 가치로 또다시 1200억원을 투입했다. 현 기업가치로는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컬리는 한두 차례 상장할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 사이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촉발된 비대면 소비 특수가 끝나며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는 평이 많다. 상장 역시 당분간은 쉽지 않아졌다는 분석이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이제 '타이밍을 놓치면 IPO 엑시트는 끝이다'란 생각이 있기 때문에, 몸값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일단 상장하자’는 생각이 많다”며 “실적 등 기업의 본질 가치에 문제가 없다면, 애초에 비싼 가격으로 나가기보다 상장 후 시장에서 평가받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올해 공모주 시장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거란 전망이 나온다.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며 발행사들이 높은 공모가를 고집할 수 없게된만큼, 공모주 투자 수익률 자체는 개선될 가능성이 큰 까닭이다. 투자 수익률이 개선되면 다시 공모주 시장에 관심을 가지는 투자자 수는 늘어나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상장을 완료한 공모주 대부분이 공모가 대비 두 자릿 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공모가 대비 시초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기업은 코스피 상장사 엠앤씨솔루션(-10.77%) 정도에 불과하다. 공모가 대비 수익을 낸 12월 상장사 대부분은 최초 제시한 공모희망가 밴드 내에서 공모가를 확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IPO 시장이 침체해 있긴 하지만 대어들도 겸손한 가격으로 나오려는 추세가 있어서 투자자들에겐 오히려 기대가 될 수도 있다”며 “파두 등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다들 경각심이 커진 상태”라고 말했다. 

      공모시장을 향한 금융당국의 눈초리가 매서운 것도 시장 ‘정상화’에 영향을 미칠 배경으로 꼽힌다. 이른바 '파두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은 IPO 시장 신뢰 회복에 나서겠단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금감원은 주관증권사의 실사 의무 등 책임을 강화하고 증권신고서 공시 서식을 개정하며, 공모가 산정의 합리화 등 제도 개선에 나설 계획이다. 

      최근 탄핵정국에서 금융 당국이 오히려 ‘소신 있게’ 일하는 시기가 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렇다 보니 증권가에서는 금융당국의 눈총을 받을 일은 만들지 말자며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파두와 관련해서 앞서부터 증선위 등 당국이 엄중한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결론을 냈지만 증시 위축 우려로 진행을 미뤄왔는데, 이제는 사실상 정부 눈치도 볼 필요가 없으니 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대표적인 공모주 포퓰리즘 정책으로 꼽히는 초일가점과 균등배정 정책 등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모주 시장을 구조적으로 '투기판'화 시키고 있는 일부 제도의 경우 정비를 통해 시장 과열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공모주펀드 운용역은 "IPO 시장의 과열을 만들어낸 현 공모주 제도 중 일부는 '공모주는 반드시 수익이 날 것이다'라는 전제 하에 만들어진 부분이 있다"며 "발행사와 주관사의 책임을 강화하는만큼, 투자자의 자기 투자 책임 원칙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