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은 OK, PEF는 NO?…MBK 집중공격 시작한 야당
입력 2025.01.09 07:00
    취재노트
    상법개정으로 주주가치 강화하자더니
    MBK파트너스 겨냥한 '저격 세미나' 연출
    PEF 입장 없는 일방통행 토론회 진행
    자본시장 선진화는 뒷전 속 정쟁 난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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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사모펀드의 적대적 M&A,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8일 국회에서 열렸다. 14명의 현직 의원들이 공동 주최한 대규모 세미나였지만, 균형 잡힌 토론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를 계기로 열린 이번 토론회는 상법개정안 통과를 위한 야당의 여론전 무대이자, 특정 사모펀드를 겨냥한 일방적 세미나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토론회 내내 야당 의원들의 목소리는 한결 같았다. 사모펀드는 '악(惡)'이고, 국가기간산업을 노리는 위험한 존재라는 것이다.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의원은 "가맹점-가맹본부 간 모바일상품권 수수료 분담 문제에서도 사모펀드 소유 가맹본사가 유독 수수료를 가맹점에 전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정무위 김남근 의원도 "경제 약자들을 어렵게 하는 부분에는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특히 국민연금 문제를 놓고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야당은 국민연금이 올해 1조원 규모의 PEF 위탁운용사 중 하나로 MBK파트너스를 선정한 것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희승 의원은 "국민의 노후자금이 적대적 M&A에 투입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를 향한 집중포화는 계속됐다. 조혜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법률원 변호사는 "MBK가 인수한 홈플러스와 C&M(현 딜라이브)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었다"며 "노동시장 불안정성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발제를 맡은 이정환 한양대 교수도 "사모펀드의 단기 재무성과 중심 투자가 기업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세미나의 가장 큰 문제는 균형의 부재였다. PEF협의회 등 업계 단체와는 사전 소통조차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여년간 PEF 자문을 해온 이성훈 KL파트너스 변호사가 유일한 업계 측 발언자였다. 고려아연 노조 등 노동계 입장만 반영된 탓에, 투자업계의 목소리는 배제됐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이는 결국 정치적 '내 편 찾기'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야당은 그간 재벌도, 사모펀드에 대해서도 모두 우려를 표했다. 재벌의 경영권 승계는 '세습'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사모펀드의 인수합병은 '먹튀'라고 비판해왔다. 그러다 이번엔 돌연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의 편에 섰다.

      여기서 야당의 모순적 행보가 더욱 도드라진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주주 권익 강화를 통한 '기업 가치 제고'가 핵심이다. 이번 세미나를 주도한 의원 상당수가 이 개정안을 추진하는 국장부활TF 소속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상법 개정안이 도입되면 오히려 사모펀드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사 충실의무 확대로 주주 가치가 강조되고, 대기업 집중투표제 활성화와 주주제안 강화로  PEF의 경영 참여가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PEF업계 관계자는 "문제가 있는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높이는 것이 사모펀드의 본질인데, 이는 상법 개정안의 취지와도 일맥상통한다"며 "구조조정 자체를 악마화하고 정쟁화하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꼬집었다.

      토론회 개최 과정도 아쉬움이 남는다. 토론회 주최 측이 당초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실에 먼저 문의했으나, 탄핵 정국으로 힘이 빠지자 야당으로 선회했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에서 '재벌 저격수'를 자처하던 민주당이 이번엔 재벌 총수의 편에 서게 됐다. 

      이날 세미나의 일방적인 진행은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동떨어져 있다. 최성호 경기대 교수가 제시한 미국의 CFIUS(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 사례나, 이성훈 변호사가 설명한 해외 사모펀드의 실제 운영 방식 등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국장부활'을 가져올 외국계 투자자들의 시각은 차갑기만 하다. 다수당이 이분법적 논리로 입법을 추진하고, 특정 세력을 겨냥한 정치 세미나를 여는 모습은 한국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계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의 가장 큰 리스크로 '정치적 불확실성'을 꼽는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작년엔 재벌을, 얼마 전엔 사모펀드를 적대시하더니 이번엔 또 재벌 편에 서니 다음엔 누구를 겨냥할지 알 수가 없다”며 "국민연금의 사회적 책임은 강조하면서, 정작 정치권의 사회적 책임은 저버리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자본시장의 발전은 균형 잡힌 시각에서 출발한다.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 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는 국제 기준에 맞는 제도 개선이 불가능하다. 정작 가장 큰 '악'은 이런 정치권의 모순적 접근 그 자체일 수 있다. 정치 논리가 자본시장을 좌우하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