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투자 하지 마라?…무위험 사업장도 현장실사 요구받는 보험사들
입력 2025.01.10 07:00
    취재노트
    보험사 대체투자 기준 강화로
    무위험 사업장도 실사 대상으로
    보험업계 포트폴리오 재편 시작에
    비수도권 PF는 생존 위기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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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해부터 국내외 부동산 투자 부실 사태가 잇따르자 금융당국이 보험사 대체투자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제도권 금융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전이를 막기 위해, 보험사의 실사(Due Diligence) 기준을 한층 높이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를 두고 보험업계에선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볼멘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중은행도 면제하는 무위험 PF 사업장까지까지 현장실사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해외는 물론, 국내 지방 사업장까지 실사 대상에 포함되면서 보험사들의 PF 투자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과 보험협회 등은 지난해 8월30일 '보험회사 대체투자 리스크관리 모범규준' 개정안을 확정했다. 투자자산을 트랜치, 만기, 투자지역 등으로 세분화해 관리하고 현장실사를 원칙으로 하되 불가능한 경우 대체절차를 마련하는 내용이 골자다. 

      당국은 특히 위기상황 점검을 위해 자산가치, 공실률, 임대율, LTV, DSCR, 자본환원율, 부도율 등 구체적인 변수를 명시했다. 자산가치가 20% 이상 손실될 경우엔 상환·매각 여부 등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도록 했다. 

      당국 관계자는 "최근 해외 부동산 PF 등에서 발생한 손실 사례들을 반영, 리스크 관리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수립했다"며 "실사 내용을 기반으로 투자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보험사들이 금융당국의 새로운 실사 규정에 발맞춰 내부 규정을 정비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실사 대상의 범위가 크게 확대됐다. 해외 투자는 물론, 국내 무위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까지 현장실사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일부 회사들은 건물조차 없는 토지 사업장까지 방문 점검해야 하는 상황에 부담을 느껴 실사 인력과 비용 확보에 고심하고 있다.

      A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손실 가능성이 없는 사업장도 실사 규정 강화 때문에 현장 방문이 필수가 됐다"며 "증권사와 시중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들이 실사를 마친 사업장도 투자를 결정하면 별도 실사를 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B 손해보험사도 발걸음이 바빠졌다. 지난해 9월부터 감사파트 권고에 따라 리스크등급을 나눠, C등급과 D등급의 경우 사후실사까지 실시하도록 했다. B 회사 관계자는 "위험 난이도와 관계 없이 모든 신규 PF에 실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사후 실사는 지침상 명시하고 있지 않으나 일부 강제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C 생명보험사는 구조화상품 등 간접 투자상품에 대한 현장실사도 시작하기로 했다. 개정안 이전에는 해외부동산 투자의 경우에만 실사를 의무화하도록 했지만, 이젠 비수도권 토지 개발 단계에서도 현장을 방문해야 한다. 

      D 생명보험사는 대체투자 환경 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에 나섰다. 올해 대체투자팀 인력 충원을 전면 중단하고, 해당 인건비를 채권팀 확충에 재배정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강화된 실사 규정과 투자 리스크 관리 압박으로 인해 보험사들이 보다 안정적인 투자 포트폴리오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D사 관계자는 "이미 지급여력비율(킥스·K-ICS) 및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으로 업권의 대체투자 여력이 많이 낮아졌다"며 "결국 투자 심사가 더 까다로워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얘기인데, 무위험PF 사업장도 실사를 가야 한다면 투자 자체를 재고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업권의 대체투자 실사 강화 규정은 PF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부동산PF 기관투자자(LP)풀은 주로 보험·은행권·증권·저축은행·연기금·공제회 등으로 구성됐다. 다만 대부분의 기관들이 리스크 관리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건설·부동산업계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짙다. 일각에서는 보험사를 LP풀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마저 감지되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당국의 조치가) 보험사들을 대상으로 위험자산에 투자하지 말란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며 "LP 모집에서 이미 보험사들을 선택지에서 제외하고 운용사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비수도권 PF 사업장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R114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분양된 64개 지방 단지 중 64%인 42곳이 모집 가구 수를 채우지 못했으며, 전국적으로도 123개 분양 단지 중 54%가 미달되는 등 지방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수도권의 경우 상대적으로 실사가 용이하지만, 지방 사업장은 실사 난이도 자체가 투자 검토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사의 투자 축소로 인해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되거나 사업성이 크게 저하될 것이라는 불안감도 높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수도권이야 갈 일이 많아 겸사겸사 실사를 할 수 있지만, 지방은 실사 비용만 따져도 투자 검토가 쉽지 않다"며 "결국 지방 PF 사업장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