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쟁력 복원 작업 기대감 외에 조급함·답답함도 상당
대기업 전반에 中 그늘 드리운 때에 삼성 반도체 '한방'이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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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작년 4분기 최악의 성적표를 내놓자 올해 실적에 대한 시선도 복잡 미묘해지고 있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반도체의 화려한 부활이 절실한 분위기이고, 회사 내부도 경쟁력 복원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성패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어느 때보다 삼성전자의 한방이 필요한 때라 성과에 대한 갈증이 갈수록 깊어지는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4분기 영업이익이 6조5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8일 공시했다. 연말 들어 본격화한 중국 CXMT의 D램 추격 여파를 감안해 일찌감치 눈높이를 낮췄으나 실적은 시장 기대치를 한참 밑돌았다. 3분기 반도체(DS) 부문 영업이익은 SK하이닉스의 절반을 살짝 넘기는 정도였는데 4분기 양사 격차는 두 배 이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 적자만 분기 2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올 1분기 중 분위기가 바뀌긴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여전히 엔비디아의 품질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전략적 인내를 이어가는 상황은 다행이나, 주가는 계속해서 그의 발언 하나하나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AI) 마중물을 직접 받아내기 힘든 범용 메모리 업황은 상반기까지 답답한 국면이 예고된다. 삼성전자 실적도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과 전영현 DS부문장 부회장은 잠정실적 발표 전 공동명의로 비교적 조용한 신년사를 내놨다. 초격차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재도약의 기틀을 다지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자는 내용 정도가 담겼다. 대외 분위기를 감안해 시무식은 진행하지 않았다. 본업에서의 확실한 성과 없이는 분위기 반전이 어려워 조용한 새해를 맞이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시장에선 기대감 외에 조급함이나 답답함, 안타까움 등이 한꺼번에 전해진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전후방 고객사, 협력사까지 포함해서 고용, 수출 규모, 시가총액 비중 등을 감안하면 우리 경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몫이 25%를 넘긴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라며 "삼성전자, 특히 반도체 사업이 과거 위상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국가 경제 상황이 좋아지기 어렵다는 얘기라 더욱 분위기가 가라앉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삼성전자와 협력 관계에 있는 조 단위 인수합병(M&A) 두 건이 연달아 차질을 빚었다. 에어프로덕츠코리아 매각은 거래 자체가 무산됐고, 효성화학의 특수가스(NF3) 매각은 가격 문제로 난항을 겪다 계열 간 거래로 방향을 틀었다. 비슷한 사업을 보유한 사모펀드(PEF)는 물론 두산그룹 등 반도체 시장에 발을 걸친 대기업들의 전략에도 차질이 불거진 것으로 확인된다. 삼성전자 주가가 작년 하반기 고점에서 30% 이상 폭락하며 증시가 휘청거리자 주식자본시장을 통한 조달까지 줄줄이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대기업들의 혁신 역량에 대한 안팎 평가에도 급격히 금이 간 상황으로 전해진다. 올 들어 대기업 주력 산업 전반은 본격적으로 중국 그늘에 삼켜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원래 삼성전자 반도체만은 이 같은 우려와 동떨어진 독보적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SK하이닉스 HBM만이 바통을 이어받은 양상이다. 삼성전자 DS 부문 역시 다른 수출산업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對)중국 통상 규제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형국이라는 얘기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나, 배터리 산업처럼 새로 열리는 시장도 아니고 원래 한국이 독점하다시피 하던 메모리 시장에서 미국의 견제 역량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으로의 장비수출 규제가 없으면 손쓸 도리가 없어진다"라며 "달리 보자면 삼성전자를 포함한 한국 기업 전체가 첨단산업에서 미국 도움 없이 살아남기 힘든 구간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연히 전 부회장 복귀 이후 삼성전자의 경쟁력 복원 작업에 대한 기대감도 더 높아지고 있다. 지난 연말 대대적인 인사 교체를 단행한 삼성전자는 전 부회장 지시로 D램 설계부터 다시 잡아나가는 작업에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 성패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종전 대비 전략적 방향성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