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發 리스크 확산…애경그룹 스터디 시작한 투자자들
입력 2025.01.13 06:58|수정 2025.01.13 07:13
    애경그룹 관련주 주가 급락
    주식담보대출, EB 대응 시급한 AK홀딩스
    현금 동원 가능한 계열사는 사실상 제주항공뿐
    "애경그룹은 제주항공을 지킬 수 있을까?"
    현금화 가능 자산 및 매물 출회 가능성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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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의 여파로 제주항공은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 소비자들의 항공편 취소가 이어졌고 회사의 주가는 급락했다.

      그룹의 몇 안되는 캐시카우로 꼽히는 제주항공의 재무적 위기는 애경그룹에 적지 않은 여파를 미치고 있다. 제주항공 추락 사고가 언제,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긴 어려운 상황이지만 투자자들은 애경그룹에서 촉발할 수 있는 자본시장 내 거래에 주목하는 분위기이다.

      제주항공의 현재 주가는 지난 2015년 코스피에 상장 한 이후 10년 내 최저점으로 치닫고 있다. 제주항공의 모회사인 AK홀딩스의 주가는 현재 1만원 수준으로, 10년전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코스피 상장사인 애경산업과 애경케미칼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는 애경자산관리, AK홀딩스는 제주항공의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해 왔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제주항공 주가의 급락은 두 회사에 모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주항공의 지분 50.37%를 보유한 AK홀딩스는 이 가운데 약 33%를 금융권 담보로 제공하고 자금을 조달했다.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우리투자증권 등 금융기관에 해당 주식을 담보로 제공, 이자율은 최소 4.4%에서 최대 6.3% 수준에 약 1500억원을 조달했다. 담보유지비율은 120~180% 수준이다. 

      최근 제주항공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일부 대출은 담보유지비율을 하회하기 시작했다. 당장 금융기관들이 제주항공 주식에 대해 담보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현재의 상황이 지속한다면 AK홀딩스는 추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대출 일부를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사고 이후 AK홀딩스는 지난해 6월 담보대출 계약을 맺은 우리투자증권에 원금 300억원 가운데 일부인 15억원을 상환하기도 했다.

      AK홀딩스가 제주항공 주식을 담보로 발행한 교환사채(EB) 역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AK홀딩스는 지난 2022년 제주항공 주식 약 805만주를 기초자산으로 1300억원 규모의 EB를 발행했다. 교환가액은 1만6150원이었으나, 주가가 꾸준히 하락하며 교환가액이 조정됐다. 일부 투자자들은 상환을 요구하며 자금을 회수한 바 있다. 현재 잔액은 약 780억원인데 이달 5일부터 약 한 달간 3회차 조기상환청구가 진행된다.

      AK홀딩스 측은 유동성 위기에 대해선 문제 없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자금 소요에 어떻게 대응할 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3분기 기준 AK홀딩스의 현금성 자산은 약 25억원에 불과하다. 제주항공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배당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현재로선 선택하기 쉽지 않아보인다. 당초 'BBB'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던 AK홀딩스는 최근 회사채 발행 계획을 철회하며, 신용평가사에 신용등급부여 취소 요청을 했다.

      제주항공 주식담보대출, EB 등 당장의 자금 소요에 대응한다 하더라도 그룹 차원의 사업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그룹 차원의 재무부담이 가중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사모펀드(PEF), 투자은행(IB) 등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애경그룹에서 자금을 동원할 수 방안에 대해 미리 학습하기 시작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애경그룹 차원에서 자금 소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다양한 자금 조달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했다"며 "매각 가능한 비유동 자산과 주식을 비롯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애경그룹에서 현금 동원을 위해 활용 가능한 자산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사업적으로 현금 창출력이 우수한 계열사 또는 사업부가 사실상 제주항공밖에 없다. 결국엔 애경그룹이 끝까지 제주항공을 지킬 수 있을지로 문제는 귀결된다.

      국내 한 대형 PEF운용사 대표급 관계자는 "이번 사고에 대한 제주항공의 과실 여부를 떠나 당분간 그룹 차원에서 확장 전략을 펼칠 수 없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며 "현재의 재무적 부담이 지속한다면 결국 어떤 자산이든 현금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룹 전반적인 현황을 스터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는 긴장하는 분위기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으로 인해 업계 재편이 가시화한 상황이었고, LCC 부문 역시 통합의 움직임이 가속화 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제주항공이 더 이상 유의미한 원매자(투자자)로 등장할 수 없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시점이기 때문에 항공업계의 구조조정 역시 기약 없이 지연할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한진그룹 산하 통합 LCC 출범에 맞서 중소·중견 LCC들의 합종연횡 가능성을 높게 봤지만 일단 제주항공이 구심점이 될 수 없는 상황은 업계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애경그룹 상황을 비쳐봤을 때 제주항공 자체가 매물로 출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룹의 재무 상황 역시 관련 업계에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중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