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 관련 규제 도입 전망됐지만, 논의 길어져
재간접펀드 방식 합법인 탓에 꼼수 여부 확인 어려워
해외 SPC 설립 등 또다른 규제 우회 전략도 생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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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기업공개(IPO) 거품의 원인으로 지목받아 온 '공모주 재간접 펀드'를 막기 위한 규제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 재간접 펀드 운용 방식이 합법이어서 해당 펀드를 '꼼수' 목적으로 설립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8일 증권가에 따르면 금융투자협회와 금융당국은 공모주 재간접 펀드 규제를 위한 논의를 지속 중이다. 금투협은 지난해 5월부터 재간접 펀드 규제 도입을 위한 업계 의견을 수렴해 왔다. 이에 업계에선 2024년 중 재간접 펀드 규제 관련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금투협과 금융당국이 뾰족한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며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
공모주 재간접 펀드는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로, 레버리지 효과를 통해 더 많은 공모주를 배정받기 위해 일부 사모 운용사들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가령 A펀드에 설정된 자금 중 일부만 공모주를 사고, 나머지 자금으로 B펀드에 재투자하면 두 개의 펀드를 활용해 공모주 물량을 받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공모주 재간접 펀드는 공모주 중복청약을 피해 더 많은 물량을 배정받기 위해 나온 '꼼수' 전략으로 통한다.
금융투자협회는 2023년 7월 '허수성 청약 방지 제도'를 통해 기관이 고유재산으로 청약할 시 자기자본 내에서만 수요예측이 가능하도록 했다. LG에너지솔루션 IPO 당시 순자본금 5억원, 순자산 1억원의 기관투자자가 9조5000억원의 수요를 제출하는 사례 등이 발생하자 허수성 청약 관행이 수요예측의 가격 발견 기능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일면서다.
문제는 금융당국과 주관사가 공모주 물량 확보를 위해 만들어진 꼼수 펀드인지 진위 여부를 판별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재간접 펀드는 합법적인 펀드 운용 방식인 까닭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271조의14제4항제5호에 따르면 기관전용 사모집합투자기구는 기관전용 사모집합투자기구의 유한책임사원이 될 수 있고, 재간접투자 비율도 별도로 제한되지 않는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관련 규제 도입과 관련해 관계자 간 이견이 있어 논의가 길어지는 중"이라며 "재간접 펀드 규제 도입이 어려운 가장 큰 원인은 재간접 운용 방법이 고유한 펀드 운용 방법이다 보니, 규제 우회를 위한 재간접 펀드인지 아닌지 구분해 내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IPO 주관사 입장에서도 재간접 펀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사실상 이를 구분해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이미 증권업계에선 허수성 청약 방지 제도 도입 후 기관별로 AUM이 정확하게 기입됐는지 일일이 대조에 나서며 업무상 비효율이 크게 늘어났다는 불만이 늘어난 바 있다.
증권사 IPO부서 관계자는 "공모주 재간접 펀드를 규제할 필요성은 느끼지만, 현재로선 도입이 불가능해보인다"라며 "주관사들이 실무 시간 안에 재간접펀드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정보도 한정적이라 제대로 구분해 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모주 청약 방지 제도를 규제하는 방식이 생겨날 수록 규제를 우회하는 방안도 끝없이 생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운용업계에선 지난해 여름부터 재간접 펀드를 통한 공모주 펀드가 막힐 수 있다는 소문이 돌자, 이를 대비하는 또다른 꼼수 전략이 떠오르고 있다. 홍콩 등 해외에 특수목적펀드(SPC)를 설립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공모주 재간접 펀드가 막힐 것이란 얘기가 나와서, 홍콩에 SPC를 세우는 곳을 검토하는 운용사들이 생겨나고 있고, 또 설립한 곳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더 많은 공모주를 배정받기 위해 규제를 우회하는 방식은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