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해도' 상반기는 혼란 이어질 듯
과거 2017년에도 업계 성장 주춤
금융 당국 내부 부정적인 시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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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모펀드(PEF) 운용사(GP)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는 시장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는 시선들이 적지 않았으나, 예상하지 못한 정국 혼란이 터지면서 걱정이 앞서고 있다. 연기금·공제회 등 국내 기관투자가 ‘큰손’들의 리더십 공백이 나타나고 있고, 여기에 금융감독원 등 당국에서는 ‘사모펀드의 역할’을 언급하며 눈총을 주는 분위기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두고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진행 상황을 살펴보면 ‘못해도’ 상반기는 정국 혼란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 소추안을 인용했다. 3월 15일 대선이 공고됐고 약 2개월 후인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진행된 2017년 국내 PE 시장은 정체기를 보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PE 약정액은 2005년 이후 꾸준히 뚜렷한 증가세를 보여왔으나, 2017년 처음으로 그 증가세가 멈췄다. 기관 전용 사모펀드 약정액은 2016년 62조2000억원을 기록했고 2017년 62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투자 이행액도 2016년 43조6000억원에서 2017년 45년5000억원으로 미미한 증가를 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절차들이 비교적 빠르게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그해 정국 혼란의 영향이 이어졌다”며 “아무래도 CIO 등 인선 공백이나 공적 자금 집행이 주춤한 면이 있는데, 올해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이 어렵다. 곳간을 미리 채워둔 곳들은 그나마 낫지만 그렇지 못한 곳들은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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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투자 사모펀드들은 대부분 자금을 공제회 등에서 조달하기 때문에 국정 혼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내각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인사 등 리더십 공백이 생기는 점이 크다. 또한 기관들이 정국 혼란으로 집행하려던 자금 집행 건들을 늦추는 경향도 나타날 수 있다.
최고투자책임자(CIO) 임기가 다다른 곳들은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전해지고 있다. 서원주 국민연금 CIO의 2년 임기는 지난해 12월 26일 만료됐다. 당초 임기 종료일 이전에 연임을 공식화할 것으로 관측됐으나 늦춰지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의 인선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다. 예상된 개각과 인사 절차가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보니 CIO 인선은 올해 하반기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기술인공제회, 행정공제회 등도 수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김성수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은 이달 3년 임기가 종료된다. 행정공제회는 2월 도래하는 허장 CIO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공개 모집에 들어갔다. ‘3+3년’ 연임이 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업계에서는 허장 CIO의 연임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하고 있다.
교직원공제회는 고재택 기금운용전략실장이 새 CIO로 내정됐다. 1년 7개월 동안 임원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경찰공제회는 배용주 전 이사장 퇴임 이후 새 이사장을 뽑지 못하고 있다. 이사장 공백에 따라 CIO도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 등 관(館)에서 사모펀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함용일 부원장 주재로 기관전용사모펀드 운용사 CEO 등과 간담회를 열고 PEF의 바람직한 역할과 책임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당국이 '메시지'를 던지면서 올해 금감원이 GP 대상 검사에 나설 지도 주목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감독 당국 내에서는 사모펀드 업계가 ‘전문가들의 영역’이니 규제 강화보다는 풀어주는(?) 것이 맞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사모펀드가 산업 등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다 보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도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특히 PEF 시장 개방에 앞섰던 ‘모피아(재무부 출신 인사)’들 사이에선 정부에서 PEF에 ‘우호적 환경’을 만들어준 것에 비해 사회 내에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시선들이 있다.
2004년 12월 PEF 제도가 도입됐고, 2006년 투자 제한 완화에 이어 2017년 해외투자 제한이 완화됐다. 2009년 시행된 자본시장법을 통해 PEF 투자 운용 규제 완화를 이어갔다. 2015년에는 사모펀드 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 PEF 결성 규제를 사전등록제에서 사후등록제로 완화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사모펀드를 바라보는 당국 내 부정적인 기류가 커졌다”며 “정부에서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사모펀드 시장을 열어줬는데, 업계가 성장하는 동안 그들이 국가 산업 발전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