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속 인수금융 시장도 활기
연말인사에서 4대 은행 인수금융 담당자 승진
RWA 부담 작아서 올해에도 영업 활발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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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시장 침체기 속에서도 양극화로 ‘빅딜’이 꾸준히 나오면서 은행도 인수금융에 힘을 주고 있다. 지난 연말인사에서 이런 기조가 명확해졌다는 평가다. 한때 ‘승진자의 무덤’이란 평가도 나왔지만, 올해는 담당자들이 잇따라 승진하며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연말인사에서 4대 은행 인수금융 담당자들이 대거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우선 신한은행의 정근수 부행장이 신한투자증권 사장으로 승진했다. 정 사장은 신한은행 GIB 및 대기업그룹장(부행장)으로 투자금융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로 결국 사장 자리까지 꿰차게 됐다.
한 투자금융 업계 관계자는 “정 사장이 부행장이 된 것만으로도 당시 화제가 되었다”라며 “신한금융 뿐 아니라 타 은행의 경우에도 인수금융 담당자들이 부행장 승진에서 대부분 누락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정 사장의 후임으로 역시 인수금융 전문가인 장호식 본부장이 신한은행 CIB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정 사장에 이어 인수금융 전문가가 부행장 자리에 오른 두번째 사례다. 장 부행장은 2007년 부터 투자금융 부문에서 일하면서 IB 관련 오랜 업력을 쌓았다. 작년에는 신한은행 미래 경영진 육성 프로그램(신한퓨처 AMP)에 선정되어 연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부행장 승진으로 조직 내에서 입지를 더 다지게 되었다는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GIB 부행장의 경우 인수금융과 부동산 부문이 경쟁하는 자리인데 이번에도 인수금융 부문에서 부행장을 배출했다”라며 “인수금융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란 해석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이동락 투자영업 부장이 투자영업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장 승진으로 과거와 달라진 기류가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인수금융 부서는 그간 해외에 나갈 기회가 많기 때문에 혜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승진에선 다소 불리한 부서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영업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나은행도 인수금융 강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나은행은 투자금융본부를 신설하고 투자금융섹션을 담당하던 권용대 부장이 연말인사에서 임원급인 투자금융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하나금융은 하나은행뿐 아니라 하나증권에도 인수금융 부문을 확대하면서 그룹 차원에서 미래성장 동력으로 삼으려고 한다.
우리은행은 전현기 투자금융본부장을 지주의 성장지원부문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지난해 ‘인적쇄신’을 단행하면서 대규모 물갈이 인사를 단행한 중에서 미래 성장부문을 전 부사장에게 맡긴 것은 그만큼 IB와 인수금융 업무에 힘을 쏟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에다 우리투자증권이 출범하면서 그룹 내에서 IB 업무 비중이 커질 것도 감안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성장지원부문에서 은행과 증권의 협업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그런면에서 인수금융과 IB 업무 경험이 있는 전 본부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킨 것으로 해석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은행들이 인수금융 부문을 강화하는 배경으론 달라진 영업환경이 꼽히고 있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은행들은 기업대출에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기업 부실이 늘어나면서 이마저도 늘리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가계대출은 정부에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늘리기 힘든 구조다. 여기에 한때 먹거리였던 부동산 부문은 PF 부실이 현실화하면서 확장보다는 관리에 방점이 찍힌 상황이다.
그나마 확대 여력이 있는 곳으로 인수금융 정도가 거론된다. 작년과 재작년 고금리 여파로 M&A 시장이 줄어들긴 했지만, 작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조단위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에코비트, SK스페셜티를 비롯해 매각이 무산되긴 했지만 에어프로덕츠코리아까지 많게는 5조원까지 거론되는 딜이 나오면서 인수금융 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하반기를 기점으로 금리 인하가 본격화하면서 라파이낸싱 수요도 늘어났다. 은행의 주력 먹거리까진 아니더라도 신성장 동력으로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기업대출, 가계대출, 부동산 PF까지 은행들이 영업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적이다”라며 “그러다 보니 인수금융에 다들 힘을 쏟으려고 하고, 이런 부분이 인사로 드러난 것 아닌가 한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은행들이 자본비율 관리 때문에 위험자산을 늘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수금융을 늘리는 것은 이런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도 힘을 받는 이유로 거론된다. 한 인수금융 관계자는 “RWA 관리가 화두인 상황에서 이런 부담이 작은 인수금융이 상대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됐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