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부진, 캐즘 아닌 공급과잉 탓"…2차전지 업계, 연초부터 최악 분위기
입력 2025.01.22 07:00
    민관 2차전지 비상 TF도 출범…LG엔솔·삼성SDI·SK온도 참여
    캐즘 아니라 공급과잉 문제라면…실효성 있는 방안 있을까
    올해 3사 캐파 작년比 50% ↑…美 시장 수요 2배 넘길수도
    LG엔솔 캐파 채우고 SK온 줄이고…유동성 관리여력도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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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전기차 시장의 부진을 일시적 수요 정체(캐즘)로 볼 수 있느냐는 회의감이 적지 않다. 2차전지 산업 위기감을 잠재우려 민관이 합심해 비상대책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있으나 현재를 단순한 공급과잉으로 본다면 실효적 대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배터리 3사가 동반 적자를 예고하는 가운데 연초 업계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배터리산업협회, 국내 2차전지 셀·소재 기업들은 최근 2차전지 비상대책 TF를 구성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인한 불확실성과 길어지는 캐즘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산업계가 손을 맞잡는 구도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도 TF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작 시장에서는 전방 전기차 판매 부진으로 인한 2차전지 산업의 부침을 캐즘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작년부터 본격화한 부진이 단순한 공급과잉 문제라는 진단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현지 과잉 설비투자를 유도해서 자국 완성차 업체 협상력을 끌어올리고, 배터리 가격을 낮추기 위한 그림 아니었냐는 말까지 나온다"라며 "북미에서만 2차전지 캐파(capa, 생산능력)가 3~4배로 뛰었는데, 작년부터 전기차 판매 성장이 꺾이면서 적자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배터리 업계에선 이미 작년 중 국내 배터리 3사의 미국 현지 캐파가 시장 수요의 2배 수준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생산세액공제(AMPC)와 같은 당근을 제시하며 현지 투자를 급격히 늘렸는데 전기차 수요 성장은 더뎌 괴리가 커진 것이다. 올해는 이 괴리가 정점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 3사가 수년간 계획한 설비투자가 순차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며 올해 중 상업가동을 앞두고 있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 3사의 올해 글로벌 캐파가 작년보다 50%가량 늘어날 예정인데, 증가분 상당수가 북미 지역에 집중돼 있다"라며 "반면 올해 전기차 판매 성장은 15% 안팎 수준으로 예상된다. 늘어날 판매량 중 테슬라나 BYD 같은 상위 업체 몫을 빼면 국내 3사의 공급과잉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LG엔솔은 작년 4분기 AMPC 보조금을 반영하고도 적자를 기록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SDI 역시 적자로 돌아섰을 것으로 내다본다. 아직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한 SK온을 포함해 3사가 동반 적자에 돌입한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에 약속한 보조금 정책을 이어간다고 하더라도 전방 고객사들의 판매 성적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면 당분간 적자가 계속될 거란 전망이 많다. 

      배터리 3사도 가동을 앞둔 캐파를 채우거나 줄이기 위한 고민이 한창이다. LG엔솔과 삼성SDI는 46 사이즈 원통형 배터리 양산 성공과 에너지저장장치(ESS) 통합 솔루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수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제형(폼팩터)과 수요처를 가리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분산해 가동효율을 끌어올리는 작업으로 풀이된다. SK온은 포드와의 배터리 셀 JV에 대해 34억달러(원화 약 4조9000억원) 규모 유상감자를 단행했다. 캐파 확장 계획을 무르고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이 역시 근본적 처방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선이 상당하다. 고객사들의 전기차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장 수요가 3사의 공급량을 따라잡기까지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중국 업체의 주력인 LFP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 국내 3사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ESS는 전기차용 배터리에 비해 수주 연속성이나 수익성이 떨어지는 영역으로 분류된다.  

      올해 3사의 유동성 확보 방안에도 시선이 쏠린다. 가장 성공적으로 상장한 데다 고객 기반이 풍부한 맏형 LG엔솔까지 적자로 돌아선 탓에 투자가들은 물론 신용평가업계에서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가 짙다. 3사 중 가장 보수적인 확장 전략을 펼쳤던 삼성SDI도 작년 연말 유상증자를 검토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상위 업체의 유동성 관리 성과에 따라 향후 SK온의 기업공개(IPO) 작업 가시성도 가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