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 콜옵션 행사 기한 또 다가온 SK스퀘어
인사개편 이후, FI와 다시 협상 시작
한명진 대표, 송재승 CIO 등 구심점 역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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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의 이커머스 자회사 11번가의 처리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이 이미 압도적인 점유율로 장악한 상태. 신세계그룹은 G마켓을 통해 알리바바와 손을 잡는 고육지책 카드를 꺼냈다.
SK스퀘어는 콜옵션 포기 사태로 인해 재무적 투자자(FI)와 갈등을 빚었으나 여전히 11번가의 최대주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커머스 시장 생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11번가를 제대로 키워볼 것인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원매자를 찾아 사업을 정리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 핵심 인사들은 최근 FI(H&Q 등)와 만나 11번가의 처리 방향성을 구체화하기로 협의했다.
지난 2023년 SK스퀘어는 FI가 보유한 지분 약 20%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 했고, 이후 FI의 주도로 11번가 경영권 매각이 시작됐다. 매각주관사(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를 통해 국내외 원매자와 접촉했고, 한 때 알리바바와 오아시스마켓 등이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됐다. 다만 아직까지도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진 못한 상태다.
사실 매각 작업이 지지부진한데는 SK그룹 내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인사가 전무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중순엔 SK스퀘어의 박성하 전 대표이사가 해임됐다. 그룹 차원에서 주문했던 구조조정 성과가 미미한데 따른 문책성 조치였는데 사실 11번가의 콜옵션 포기 결정과 이후에도 매끄럽지 못한 매각 작업으로 그룹 평판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점이 배경이란 평가다. 실제로 경영권 지분 매각 과정에선 최대주주인 SK스퀘어의 적극적인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룹 차원에서 어떤 의사 결정도 내리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모펀드(PEF) 업계 한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과 그룹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까지 11번가 처리 방안에 대해선 이렇다 할 지시를 내리지 못한 상태"라며 "SK그룹이 11번가를 계속 끌고 갈 것인지, 아니면 빠르게 시장에 매각할 것인지에 대한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현재 상황까지 이어져 왔다"고 밝혔다.
최근 SK스퀘어 측의 다소 전향적인 모습은 그룹의 대대적인 인사 발령 이후 조직이 다소 안정화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형일 전 11번가 대표이사 겸 SK스퀘어 최고투자책임자(CIO)가 물러남에 따라 11번가는 안정은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재편됐고, 11번가의 매각 작업은 송재승 CIO가 맡아 진행하게 됐다. 앞서 박성하 전 대표의 후임이자 그룹 내 재무통으로 불리는 한명진 스퀘어 대표이사도 11번가 사업 방향성 구체화 작업에 힘을 실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11번가의 실적은 개선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영업적자는 지난해에도 계속됐지만, 최근들어 분기 단위로 적자 규모가 점차 줄어들고 있단 점이 고무적이다. 지난해 희망퇴직, 사옥이전 등 고정비 절감을 비롯해 티몬·위메프 사태로 인한 반사이익 효과를 봤다. 11번가 측은 올해는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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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스퀘어가 콜옵션을 포기한 지 만 2년째가 되는 올해 말, 회사는 또 한번 FI의 지분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할지 여부를 결정해야한다.
물론 아직은 SK그룹 측이 적극적으로 매각 작업에 나설지 또는 11번가 사업 확장을 위해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 100%를 확보할지는 미지수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11번가가 실적 개선세를 보이고 있단 점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11번가가 쿠팡과 네이버, G마켓-알리바바 등에 맞서 자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과거 신성처럼 떠오르던 이커머스 기업들은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는 상황이고 시장은 대규모 투자금을 쏟아 부을 여력있는 대기업 위주로 재편하고 있다. SK그룹이 지난 5년간의 적자 기조를 이어온 11번가에 대규모로 투자해 심폐소생할 의지가 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한다는 평가다.
11번가의 향방은 국민연금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2018년 FI측이 11번가의 기업가치를 약 2조7500억원으로 평가하고 약 5300억원을 투자할 당시 국민연금은 이 가운데 3800억원을 출자했다. SK측에서 콜옵션을 행사했다면 투자금 회수가 가능했지만, 콜옵션 포기 이후 매각작업 역시 답보상태에 빠지면서 국민연금의 원금 역시 묶여있는 상태다. 손실을 확정할 수도, 그렇다고 손놓고 기다릴수도 없는 상황이 지속하면서 국민연금 역시 적극적으로 회수 방안 마련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