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위 점유율 격차 1%대로 좁혀져…3·4위 자리도 요동
거래소·금감원 인사 마무리되면 신상품 출시 러시 전망
트럼프·AI·버퍼형 등 새 먹거리 선점 경쟁 치열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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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025년이 ETF 대격변의 해가 될까. 170조원을 돌파한 ETF 시장에서 운용사들의 혈투가 예고된 가운데, '미국', 'AI열풍'이 새로운 격전의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달 말 금융당국 인사가 마무리되면 그간 준비해온 트럼프·버퍼형 등 신상품 출시 경쟁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이달 말 팀장·팀원급 인사를 단행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은 이미 지난 6일 부서장·팀장·팀원 인사를 마무리했다. ETF 상장을 위해서는 이들 두 기관의 심사가 필수적이다. 거래소에서 사전 적격성 심사를, 금감원에서 약관·펀드 심사를 각각 담당한다.
연초 인사는 ETF 시장의 최대 변수로 꼽힌다. 새로운 담당자들이 업무 파악에 시간이 필요한데다, 업무 초기인 만큼 혹시 모를 실수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ETF 심사가 평소보다 더욱 보수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의 경우 거래소 인사가 3~4월까지 지연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올해는 2월 이전에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연초엔 인사이동과 인수인계로 ETF 시장이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당국 인사가 빨리 마무리돼서 시장이 활기를 되찾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올해 ETF 시장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ETF 순자산이 1년만에 43% 성장하며 작년 말 기준 173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상위권 운용사들의 순위 다툼도 가열되고 있다. ETF 시장 1위 삼성자산운용과 2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격차는 1% 대에 불과하다.
4위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선전도 눈에 띈다. 미국 AI와 관련환 ETF가 인기를 얻으며 3위 KB자산운용과의 격차를 1% 포인트이내로 좁혔다. 업계에선 올해 안에 순위 역전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한투운용이 KB운용에 비해 AI, 성장주 등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테마형 ETF를 공격적으로 출시하며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엔 ETF 시장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로 해외주식형 토탈리턴(TR) ETF에 대한 정부의 과세 방침이 떠올랐다. 금융당국은 최근 해외주식형 TR ETF의 이자·배당 수익에 대해 매년 과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6조원 규모인 해외주식형 TR ETF는 이자·배당을 재투자해 복리효과를 노리는 상품으로, 대부분 S&P500(스탠더드앤드푸어스)이나 나스닥 지수에 연동돼 있다.
이번 과세안이 현실화되면 운용사 순위 경쟁의 한 축을 흔들 전망이다. TR ETF 운용이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투자자들이 미국 현지 ETF로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시장에서는 해외주식형 TR ETF 순자산 5조3000억원(전체 수탁고의 8%)을 운용 중인 삼성자산운용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2025년 ETF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미국'과 'AI'다.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미국 경제만 양호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미국 자산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공격적인 AI 투자로 기술 혁신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삼성자산운용은 2025년 투자 전략으로 'B.A.A.M(뱀)'을 제시했다. '미국 강세장(Bull Market)', '미국 우선주의:트럼프2.0(America First)', 'AI 혁명(AI Revolution)', '월배당전략(Monthly Dividend)'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ETF 시장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를 키워드로 내세웠다. 기술패권(Technology competition),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 탈세계화(Globalization-Ex), 민족주의(Ethnonationalism) 등을 의미한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수혜주와 AI 기업들이 주목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신상품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가장 먼저 '트럼프'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근 출시한 ETF는 미국 내수 매출 비중이 75% 이상인 중소형 제조기업으로만 구성됐다. 업계 최초다. 한투운용은 지난 10월부터 상품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출시하는데 힘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운용사들도 트럼프 관련 ETF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제조업 외에도 트럼프 정부의 수혜가 예상되는 기술·소비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트럼프 정부의 구체적인 행정명령이 발표되면 후속 ETF 출시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큰 관심을 얻었던 커버드콜 ETF는 진화된 형태로 꾸준히 상품이 출시될 계획이다. 퇴직연금 계좌의 ETF 수요가 급증하면서 배당형 ETF의 인기가 이어질 것이란 설명이다. 미래에셋운용은 최근 연 12% 수준의 고배당을 목표로 하는 '타이거 미국배당다우존스타겟데일리커버드콜 ETF'를 출시했다. 데일리옵션 전략으로 옵션 매도 비중을 10% 이하로 줄인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기존 커버드콜 ETF의 약점으로 꼽힌 상승장에서의 수익 제한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다.
2025년 ETF 시장의 다크호스로 '버퍼형 ETF'가 부상할지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버퍼형 ETF는 커버드콜 전략에 풋옵션을 더해 하방 위험을 제한하는 상품이다. 예컨대 -10% 버퍼를 설정하면, 기초자산의 가격이 떨어져도 손실을 10%까지 막을 수 있다. 삼성운용과 KB운용이 출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상품 구조가 복잡하다는 점이다. 버퍼형 ETF의 손실 제한 기능은 최초 설정일 기준가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 버퍼를 설정한 ETF의 경우, 상장 첫날 1만원에 매수한 투자자는 만기일에 ETF 가격이 9000원으로 떨어지더라도 1만원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중간에 11000원에 매수한 투자자의 경우 9000원까지 하락하면 2000원의 손실을 볼 수 있다. 결국 같은 ETF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매수 시점에 따라 투자자별로 손실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복잡한 구조 때문에 금융당국의 심사도 까다로울 전망이다.
자산운용업계는 이달 말 거래소 인사가 마무리되면 신상품 출시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대형 운용사 임원은 "금융당국 인사가 일단락되면 그간 준비해온 다양한 상품들이 쏟아질 것"이라며 "트럼프 관련 ETF와 버퍼형 ETF를 필두로 치열한 신상품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