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사일보다 더 큰 위기감"…탄핵 정국에 한국 투자 망설이는 해외 기관들
입력 2025.01.23 07:00
    지정학적 리스크엔 둔감했던 해외 기관들
    정치 리스크 현실화하자 투자 관망세로
    "한국을 제3국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도"
    당장 해외 펀딩에 제동걸린 PEF 운용사들
    단기투자 위축, 장기투자 수요 늘지는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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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시간 만에 끝난 계엄의 여파가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져 내수 시장이 얼어붙을 것이란 전망에 한국은행은 이미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내수의 침체와 더불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정치적 리스크를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단 점은 한국 경제에 잠재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낮은 밸류에이션', 즉 '싼 주식'이란 이점(메리트) 외에는 외국인들이 개별 기업들의 성장률을 높게 평가하고 투자할 유인이 딱히 없었던 상황. 여기에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외국인들의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더욱 얼어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해외에 주로 투자하는 국내 한 기관투자가(A)는 "주요한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애초부터 한국 투자 비중 자체가 크지 않았는데, 이번 탄핵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를 개도국 또는 제3국 수준으로 여기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며 "미국 대선 이후 글로벌 투자자들의 미국 집중도가 심화했는데, 한국에 투자하던 기관들 역시 미국에 올인하는 모습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해외 기관들의 인식은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 사모펀드(PEF) 등을 통한 간접투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엄 사태가 실제 대통령 탄핵이란 정치적 이벤트로 연결되면서 정치적 리스크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투자 관망세로 돌아서는 해외 기관들이 늘고 있단 평가다.

      국내 한 대형PEF 대표급 관계자(B)는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에 기업에 투자를 검토했던 국민연금이 해당 국가에서 갑자기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치적 리스크가 불거지면 투자할 유인이 있겠느냐"며 "반드시 투자를 해야하는 미국이나, 성장률이 아주 가파른 국가가 아니고서야 해외 기관들이 현재상황에서 굳이 한국 시장에 투자할 유인을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PEF 운용사 한 임원급 관계자(C) 역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는 둔감했던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우리나라의 대통령) 탄핵은 상당히 크게 여기는 분위기다"며 "실제로 (우리 펀드에) 출자를 고려했던 해외 기관들이 투자 검토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고 말했다.

      PEF 운용사 관계자(D)는 "지난해 말 중동 국가의 한 기관투자가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기로 계획돼 있었다. 갑작스런 계엄 사태 이후 투자 계획이 철회했는데, 당분간 해당 기관의 투자를 받는 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에만 의존해서 자금을 모으기엔 한계가 있는 5000억원 이상 또는 조(兆)단위 펀드 결성을 추진하는 운용사 상당수는 갑작스런 악재에 마주쳤다.

      인수·합병(M&A) 자문사 한 관계자(E)는 "지난해 북미와 중동 지역 기관투자가들이 한국 운용사 실사를 다수 진행했고, 운용사들의 내부관리 시스템 및 외부 변수의 대응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았다"며 "다수의 운용사드들은 수수료가 박한 국내 기관에만 의존할 수 없고 해외 LP를 많이 모으는 게 중요한데 이런 정치적 이벤트가 발생한 상황에선 쉽지 않다"고 밝혔다.

      한국 시장 자체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게 설정한 외국계 투자자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탄핵의 여파를 체감하지 못하겠단 의견도 있다.

      국내 한 중견 PEF 대표급 관계자(F)는 "계엄 사태가 워낙 빨리 끝났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외 LP들의 문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도 해외 LP들과 소통을 하고 있고, 투자 제안을 한 상태이지만 실제 자금 집행까지 이어질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대표급 관계자(G)는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 상당수는 사실 우리나라만 보고 투자하기 보단 아시아, 동아시아 권역에 투자하는 기관들이다"며 "아직까진 탄핵 이벤트가 해외 기관들의 한국에 대한 투자 심리를 크게 자극해 급격하게 투자를 줄이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대형 PEF 운용사 한 임원급 관계자(H)는 "(초)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해외 기관들은 한국의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자금 집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부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혼란스런 정치 상황을 오히려 투자 기회로 여기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주식 시장에 투자한다면 추후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는 시장이란 판단이 깔려있다. 물론 개별 기업의 성장세에 주목하기 보단, 정치 상황의 안정 이후 주식 시장의 기술적 반등 등을 기대하는 측면이 강하다. 원화 가치가 떨어진 현재의 환율 역시 일부 장기 투자자들에겐 기회가 되기도 한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 담당자(I)는 "투자자들의 방식과 전략에 따라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은 오히려 계엄과 탄핵사태 이후 기업들의 낮아진 밸류에이션에 주목해 투자 기회로 여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만 긴 호흡으로 한국 시장에 오랜 기간 자금을 묶어둘 해외 기관들이 꾸준히 늘어날 것인가는 미지수이다. 최근 기업공개(IPO) 시장의 초대어로 꼽혔던 LG CNS의 수요예측에선 외국인 투자자들의 참여가 상당히 저조했다. 장기 투자자로 여겨지는 해외 롱펀드의 유입이 적었고, 투자 주기가 짧은 기관들 역시 단기간 내 환율 변동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주식의 시세차익보다 환손실 우려를 더욱 깊게 고민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