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보수 파격 인하하며 '치킨게임' 감수에도
TR형은 막히고 수익성은 악화돼…'자충수' 평
"TR형과 유사한 방식 고민해 적용하겠다" 했지만
결국 타 운용사와 같이 분기배당 조기 전환…조급증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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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점유율 1위 삼성자산운용이 연초부터 악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외 상품 확대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토탈리턴(TR)형 상품을 늘려왔는데, 정부가 국내 상장 해외주식형 ETF 중 TR형에 대해 사실상 운용 금지령을 내리면서다.
운용업계에서는 국내 운용사들 가운데 해외 TR형 ETF 규모가 가장 큰 삼성자산운용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경쟁사 대비 열위에 놓인 해외 ETF 확장을 위해 무리하게 펼친 전략들이 '자충수'가 돼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22일 삼성자산운용은 TR형 해외 ETF 2종을 오는 24일부터 분기 단위 분배금 지급형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오는 4월 말 기준 첫 분기 분배를 진행하며, 이후 1월과 4월, 7월, 10월 말일을 기준으로 분기 분배를 실시한다. TR형을 폐지하고, 프라이스리턴(PR)형으로 전환한 셈이다.
삼성운용의 이같은 결정은 기획재정부의 세법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입법예고에 따르면 기재부는 오는 7월부터 TR ETF 상품을 국내주식형에만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세제 형평성을 높이고 국내 주식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현재 국내에 상장한 해외주식형 TR ETF의 순자산총액은 약 6조원인데, 이 중 삼성운용이 운용중인 2개의 상품(KODEX 미국S&P500TR, KODEX 미국나스닥100TR)이 약 5조2000억원을 차지고하고 있다. PR형 전환에 따라 TR형의 특색이 퇴색되면, 자금이 다른 상품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운용의 해외 TR ETF의 순자산 규모가 타 운용사 대비 월등히 높은 것은 해외 ETF 확장 전략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삼성운용은 전통적으로 국내 지수 추종 ETF에 강한 하우스였다. 국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해외 ETF 라인업은 삼성운용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왔다.
당장 시장 진입 자체가 업계 2위인 미래에셋운용에 비해 뒤쳐졌다. 미래에셋운용이 나스닥100 현물 ETF를 지난 2010년 상장한 반면 삼성운용은 2018년에서야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선물 상품을 출시했고, 현물 ETF는 2021년 출시했다. 이는 2020년 8월 상장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미국나스닥100 보다도 6개월 가까이 늦은 시기다.
경쟁사 대비 시장 진입이 늦고 라인업이 약하다는 '아킬레스건'을 극복하기 위해, 삼성운용은 TR형을 택했다. 투자 수익에 대한 분배금을 투자자들에게 즉시 지급하는 PR형과 달리 TR형은 분배금을 재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에 TR형은 복리 효과가 크고, ETF를 매도하기 전까지 배당소득세를 내지 않아 세금 이연 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당시 타 운용사들에서 출시한 미국 지수 추종 ETF가 PR형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블루오션'으로 평가받던 TR형을 통해 차별화 전략을 펼치며 나름의 돌파구를 모색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더해 삼성운용은 공격적인 수수료 인하를 단행했다. 삼성운용은 지난해 4월 미 대표지수 4종의 총보수를 기존 연 0.05%에서 0.0099%로 전격 인하했다. 이는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ETF 중 최저 수준이다. 대규모 광고 집행도 따랐다. 당시 업계에서는 수십억원 규모의 광고비가 집행됐을 거라고 추산한 바 있다. '치킨게임' 비판이 일기도 했지만, 삼성운용 입장에선 나름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파격적인 수수료 인하로 지난 1년간 TR형 상품 2종은 약 4조원 가까이 순자산 규모가 늘었지만, PR형 전환을 선언한 현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다. 보수 인하로 수익성 역시 악화가 불가피했다.
운용업계에서는 TR형 상품이 출시 당시부터 조세 형평성 측면에 어긋난다는 목소리가 많았고, 당국에서도 관련한 논의가 꾸준히 있어 왔다는 반응이다. 이에 불확실성이 큰 TR형 상품의 비중 확대에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는데, 삼성운용이 이를 알면서도 해외 ETF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TR형에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당장 경쟁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틈을 치고 나서는 분위기다. 미래에셋운용은 22일 오전 TIGER 미국S&P500과 미국나스닥100에 대한 분배금 지급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오는 2월 10일까지 두 상품 중 하나를 매수하고 인증하면, 추첨을 통해 기프티콘을 제공한다.
분배금 지급 시기와 추종 지수가 삼성운용과 동일한 상품에 대해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삼성운용쪽 이탈 자금을 흡수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삼성운용이 시장 1위는 맞지만, 전통적으로 해외 ETF가 강한 하우스는 아니었다"라며 "해외 점유율 확대를 위해 펼쳤던 TR형 집중과 보수 인하라는 전략이 '부메랑'이 돼 돌아 온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당초 정부가 해외 ETF TR형 금지령을 발표했을 때, 삼성운용은 TR방식의 장점을 가장 유사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연에 한 번 배당하는 방식이 거론됐지만, 삼성운용의 선택은 타 운용사들과 동일한 분기 배당이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7월까지는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 불과 며칠 전 언급했던 '방법'에 대한 고민 없이 분기 배분을 조기에 전환한 것에서 삼성운용의 조급함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