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방향 실종에 금융위는 신중론 제기
정무위 파행에 정치권 논의도 '올스톱'
MBK·어피니티 등 대형사는 여론전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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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던진 사모펀드 운용사(PEF) '신(新) 금산분리' 규제안이 뚜렷한 정책 방향 없이 표류하고 있다. 금융당국 내부에서조차 방향 설정에 난색을 표하고, 여야 정치권도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주요 PEF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보도자료를 쏟아내며 여론전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부터 PEF의 상장사 공개매수 건이 늘어나자 올해 들어 일반주주 보호 문제를 거론하며 규제 강화 시그널을 이어가고 있다. 이복현 원장은 이달 임원회의에서도 PEF가 상장폐지 목적으로 공개매수를 하는 과정에서 일반주주 보호가 미흡한 측면이 있다며 대응 방안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은 이미 주요 PEF들과 간담회를 열고 투자 책임성 강화와 건전한 자본시장 주체 역할 등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그동안 적용하지 않았던 운용사 검사권을 본격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당국 내부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PEF 관련 규제는 소관 부처가 사안별로 나뉘어 있어 일관된 정책 방향을 잡기 어려운 실정이다. 공개매수는 금융위 공정시장과, 기술 유출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담당하는 등 주무부처가 달라 종합적인 접근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PEF 시장은 이미 자체적인 자율규제 체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운용사(GP)가 부적절한 투자나 운용 행태를 보일 경우, 기관투자자(LP)들이 다음 펀드 출자를 거절하거나 기존 위탁운용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러운 퇴출이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금융위 내부 관계자는 "PEF라는 비히클(vehicle)은 기업체가 아니라서 지배구조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영역"이라며 "기관전용 PEF는 이해관계자가 제한적이고 전문가들만 참여하는 만큼 정책 개입 필요성이 가장 떨어지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적대적 인수합병(M&A) 관련 토론회도 실효성 있는 정책 방향을 도출하지 못했다. 고려아연 사태를 계기로 열린 토론회였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구체적인 청사진 없이 '민원성 토론회'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규제안도 국민연금 출자 제한과 같은 징벌적 성격에 머물러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과징금 등 당국 제재를 받은 운용사들이 국민연금 출자를 받을 수 없도록 강제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여야 정무위원회마저 열리지 않아 관련 법안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여야 갈등이 격화되면서 정무위원회 자체가 파행을 겪고 있다. 여당도 현 정국에서 법안 하나하나 꼼꼼히 살필 여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주요 PEF들은 보도자료를 쏟아내며 여론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다.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인수 과정에서 제기된 '단기 수익 추구'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관(對官) 활동과 언론 대응에 나섰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는 최근 공식 입장을 통해 중국계 자본 논란 해소에 주력하고 있다. 롯데렌탈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 자동차 도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이례적인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싱가포르 중심의 글로벌 PEF임을 강조하는 등 적극적인 루머 차단에 나서고 있다.
PEF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규제 방향도 불투명한 데다 정치권에서는 규제만 거론하고 있어 불안감이 크다"며 "결국 적극적인 대응으로 오해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