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대응 시사한 MBK파트너스·영풍 연합
경영권 판가름 불투명…정기주총 긴장감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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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가 영풍의 의결권 제한을 둘러싼 격렬한 대립 속에 최윤범 회장 측의 승리로 끝났다. 오전 9시 예정됐던 주총은 6시간 넘게 지연된 끝에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선언이 나오면서 양측의 충돌이 격화됐다. 최 회장과 김앤장 측이 제시한 호주 자회사 순환출자 전략으로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23일 고려아연은 그랜드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린 임시 주총에서 상법에 근거해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526만여주의 의결권을 전부 제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MBK·영풍 연합의 의결권은 46.7%에서 15.55% 수준으로 급감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은 즉각 반발하며 주총 연기를 요구했으나, 연기 안건 표결 역시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된 채로 진행되면서 무산됐다. 결국 주총은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된 상태에서 안건 심의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최윤범 회장 측에 유리한 결과가 도출됐다.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제1-1호)은 참석 주식수 901만6432주 중 689만6228주(76.4%)가 찬성하며 가결됐다.
최 회장이 제안한 19인 이사 수 상한 설정 안건(찬성 73.2%)도 모두 가결됐다. 영풍·MBK 연합이 노려온 이사회 과반 장악도 현재로선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경영권 분쟁은 MBK·영풍과 최 회장 간 법적 공방으로 격화될 전망이다. 양사는 이날 의결권 제한에 대해 법적 대응과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고려아연 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고, 법원에 임시주총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최 회장 측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발하거나, 경영권 방어를 위해 SMC가 영풍 주식을 취득하게 한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소송을 걸 가능성이 있다.
영풍 측 법률대리인은 "고려아연이 불법적으로 의결권을 제한했고 이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별론으로 해도 4조원이 넘는 주식"이라며 "행위에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법리 쟁점은 상법 369조3항의 적용 여부다. 이 조항은 회사와 그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 총수의 10%를 초과해 보유할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진 모회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최윤범 회장 측은 호주 손자회사 SMC가 영풍 지분 10.33%를 매입해 순환출자가 형성됐다며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썬메탈홀딩스→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완성됐다는 주장이다.
반면 MBK·영풍 측은 SMC가 외국법인이자 유한회사라는 점을 들어 상법 적용이 불가하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이 국내 주식회사 간에만 적용되며, 외국법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회장이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외국법인을 이용한 것도 문제 삼고 있다.
한화(7.76%)와 현대차(5.05%) 등 고려아연의 주요 우호지분은 이날 주총에 불참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한화그룹은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것으로 예상됐으나, 재계 시선을 의식해 참석을 보류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측은 3월 정기주총에서 새로운 격돌을 예고한 상황이다. 오는 3월 정기주총에서는 최 회장이 선임한 이사 5명에 대한 재선임 안건이 다뤄질 예정이며, 집중투표제로 이사 선임이 가능해져 경영권 분쟁의 방향이 결정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