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줄여도 HBM 등 고부가 메모리 투자는 이어갈 예정
美 통상정책, 中 딥시크발 AI·반도체 시장 여파엔 신중한 입장
10조원 자사주 매입, 밸류업 정책도 아직은 미정…"추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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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 정책과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충격파를 던진 가운데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AI 반도체 대응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입장을 내놨다. 업황 부진이 길어지고 갈수록 사업부 전반 불확실성이 커지더라도 근본 경쟁력과 기술력으로 어려운 경영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31일 삼성전자는 실적 발표회(IR)를 열고 작년 4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이 75조7883억원, 영업이익이 6조4927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연간 영업이익은 작년의 4배에 달하는 32조7260억원을 기록했으나, 4분기 영업이익은 3분기보다 약 2조7000억원이 줄어들었다. 범용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데다 기술 경쟁력 회복을 위한 비용 부담이 늘어난 탓으로 풀이된다.
이날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회는 지난 연말 새로 선임된 박순철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박 부사장은 "현재 회사의 경영 상황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금 발생한 문제 역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 기회로 믿고 반드시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다. 투자자 여러분도 회사의 노력을 믿고 지지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라고 당부했다.
이달 초 잠정실적 발표 이후 시장의 추정대로 4분기 기대 이하의 성적표는 반도체(DS) 부문 부진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DS 부문의 4분기 매출액은 약 30조1000억원, 영업이익은 약 2조9000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10%를 넘기지 못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 수익성을 달성한 것이다.
주력인 D램은 PC나 모바일 등 주요 응용처 고객사들의 재고 조정이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여기에 HBM이나 서버용 고용량 SSD 등 고부가가치 제품군 판매는 지연되고, 레거시 시장에선 중국 업체의 물량공세에 시달리며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형국이다. 각각 비메모리 반도체의 설계와 제조를 담당하는 시스템LSI,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 부진도 계속해서 DS부문 수익성 발목을 잡는 상황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올해 메모리 반도체 시설투자(CAPEX) 계획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작년과 비슷한 수준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삼성전자의 작년 시설투자액은 약 53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약 46조3000억원이 DS부문에, 약 4조8000억원이 디스플레이 부문에 투입됐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파운드리 부문 투자가 감소할 전망인 만큼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에서만 30조원 후반대 규모의 투자가 예상된다.
박 부사장은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에선 미래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개발(R&D)과 HBM 및 차세대 D램, 낸드 등 선단공정 생산능력 확보를 위한 투자를 모두 늘렸다"라며 "올해 세부적인 투자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대체로 메모리 반도체 관련 투자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을 이어갈 전망"이라고 예고했다.
엔비디아와의 HBM 협력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지만 어느 정도 진척이 있다는 점이 공유됐다. 4분기 들어 HBM3e 8단 제품의 고객사 공급을 확대하며 이전 세대인 HBM3 매출 비중을 넘어섰고, 올 1분기에는 개선된 버전의 HBM3e 제품의 양산 공급 준비를 거쳐 2분기부터는 HBM3e 매출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엔비디아와의 소통에 따라 제품 재설계에 들어간 만큼 조만간 퀄 테스트(최종 신뢰성 평가) 통과를 앞두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최근 발표된 중국의 딥시크로 인한 타격이나 미국의 통상 정책 관련 질문에 대해선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놨다. 미국의 첨단반도체 수출 통제의 경우 일시적 판매 제약이 발생할 수 있으나 고객사와 협의를 이어가고 있고, 중국 딥시크로 인한 주요 고객사 구매 영향에 대해선 업계 동향을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쏟아진 다양한 행정명령으로 인한 삼성전자 사업부 전반의 대응 전략 역시 향후 면밀히 지켜보고 마련하겠다는 정도의 답변이 돌아왔다.
작년 11월 발표한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으로 인한 주주환원책 변동 여부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게 없는 상태로 드러났다. 삼성전자는 전체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물량 중 초기 3조원 규모의 보통주와 우선주 장내매입을 90%가량 마친 것으로 확인된다. 잔여분 7조원에 대한 매입, 소각 시점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전체 자사주 정책이 기존에 밝힌 3개년 주주환원책에 포함되는지도 차후 구체화하면 공유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부사장은 "삼성전자는 항상 주주가치 제고를 최우선에 두고 있다. 최근에는 이사회와 경영진의 신중한 논의를 거쳐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소각 계획을 결정했다"라며 "나머지 7조원의 자사주 매입을 잉여현금흐름(FCF)의 50%를 환원한다는 기존 환원책에 포함하는 지나, 밸류업 계획에 대해서도 향후 구체화하면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