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가 불 당긴 美中 AI 패권경쟁…SK하이닉스 빼곤 들러리 신세 韓 대기업들
입력 2025.02.03 07:00
    수십조 GPU 사재기 없이 AI 구현…딥시크發 충격파
    엔비디아 이어 연휴 직후 SK하이닉스 주가까지 폭락
    美中 이어 유럽까지 안보 내세워 AI 패권전쟁 본격화
    당분간 혼란 전망…대부분 韓 기업들 영향 미미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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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불러온 파급이 생각보다 거세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맞춰 마치 작정하고 양국 AI 패권 경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듯하다는 평이다. 

      당분간은 각국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반면 국내에선 전쟁의 일익을 담당하는 SK히이닉스 외엔 정부도 기업도 구경꾼에 불과해 보일 정도로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운 분위기가 전해진다.  

      31일 SK하이닉스 주가는 개장 직후 약 12%가량 폭락한 뒤 전일보다 9.86% 떨어진 19만9200원에 마감했다. 설 연휴기간 엔비디아를 시작으로 미국 기술주 전반을 덮친 딥시크의 자체 AI모델 'R1' 충격파가 국내 증시에 상장한 SK하이닉스까지 닥친 것이다. 딥시크가 보여준 성과가 기존 미국 빅테크 중심의 질서를 깨뜨릴 수 있는 수준이다 보니 시장이 당장은 우려를 더 반영하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딥시크의 R1이 가져다준 충격은 '가성비'로 요약된다. 그간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최전방에 포진한 빅테크들은 해마다 엔비디아 가속기(GPU)를 수조원어치 씩 구매하며 자체 AI 모델을 갈고닦아 왔다. 그러나 자본력도 연구개발 인력도 얼마 안 되는 중국 스타트업이 80억원 남짓한 돈으로 불과 수개월 만에 빅 테크에 필적하는 AI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딥시크는 중국 퀀트 전문 헤지펀드인 환팡퀀트에서 2023년 5월 설립한 AI 연구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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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히 발표 직후 엔비디아 주가부터 박살이 났다. 딥시크 주장대로 자체 AI 개발에 겨우 수백만달러만 투입했는지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한창이나, GPU 사재기로 대변되는 지난 2년간 게임의 법칙이 순식간에 새 국면을 맞이한 탓이다. 더 적은 칩으로 고성능 AI를 구현할 수 있다면 엔비디아의 GPU 판매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R1이 발표된 지난 27일(현지시간) 엔비디아 주식은 17% 이상 폭락했다. 이후 5거래일 동안 등락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 기간 시가총액은 원화로 580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실제로 R1 등장한 뒤 설비투자(CAPEX) 계획에 대한 빅 테크들의 메시지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29일(현지시각) 마이크로소프트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인프라를 구축할 때 한 번에 너무 많은 자원을 구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언급했다. 같은 날 메타 역시 실적 발표회에서 "현재로서는 AI 인프라 구축 능력이 중요한 경쟁 우위가 될 것"이라며 "딥시크가 향후 투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언급하기는 이른 시점"이라고 밝혔다. 

      시장의 궁금증은 딥시크를 보고도 지금까지처럼 엔비디아의 GPU를 구매할 것이냐로 좁혀지는데 미묘한 답변을 내놓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도 중장기적으로는 미중 AI 패권 경쟁 본격화로 GPU 수요가 우상향할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하면서도 단기적으로는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딥시크의 성과가 미국 정부의 대(對) 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금지 조치를 뚫고 이뤄진 것이다 보니 충격파는 외교 무대로도 확산하고 있다. 취임 일성으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같은 대규모 AI 투자 계획을 내놨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추가 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이탈리아가 국가 차원에서 딥시크 접촉을 차단했다는 외신 보도가 쏟아지는 가운데 영국을 비롯해 유럽 지역 각국 정부에서도 이번 사안을 국가 안보 문제로 접근하는 모습이다.

      미국이나 유럽 모두 당장은 안보 문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패권을 내주지 않기 위해 봉쇄작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많다. 현재 딥시크는 여타 미국 기업들과 달리 R1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W)인 만큼 조기에 접근을 차단하지 않으면 금세 사용자 기반을 넓혀 점유율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정교한 모델을 개발하면서 지배적 사업자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중 양국의 AI 패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한 만큼 당분간은 혼란이 지속될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사안을 딱 잘라 정리하기 이른 시점이라 증시 변동성도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이번 딥시크 충격파에서 국내 기업이나 증시만큼은 비교적 자유롭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사실상 엔비디아와 독점 수준의 HBM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는 SK하이닉스 주가가 폭락한 것을 빼고 나면 이번 사안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기업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중국에 납품되는 엔비디아 GPU에 일부 HBM을 공급하고 있어 미국 정부의 추가 수출 규제에 따라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 SK하이닉스에 비해 주가 변동이 제한적인 모습이다. 절대적인 GPU 투자액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네이버, 카카오 등 내수형 IT 플랫폼들의 주가가 상승하긴 했으나, 아직은 실체가 없는 추정에 가깝다. 

      탄핵 정국이 좀처럼 수습되지 않는 가운데 이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관련 발언을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으나 증시 변동성과 관련된 일반론에 그쳤다. 이 원장을 국가 차원 AI 개발이나 산업, 외교 정책에 관여할 수 있는 실질 주무부처 당국자로 볼 수 없는 만큼 사실상 정부 차원의 뚜렷한 대응 전략도 공백에 가까운 상황으로 풀이된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와 HBM 공급 협력사들을 제외하면 글로벌 AI 밸류체인에서 기관들이 직접 커버해야 하는 국내 기업이 사실상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며 "향후 양국의 AI 경쟁이 어떻게 진행되든 나머지 기업들에 대해선 미칠 영향을 특정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