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해진 글로벌 PE, 수천억 알짜 거래 주목
국내 PE도 중형 거래에 쓸 미소진자금 많아
중형 거래 주선에 자문사들 성과도 갈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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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자본시장 침체 속에 사모펀드(PEF)들은 조단위 대형 거래를 추진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매력적인 대상이 많지 않고 회수 전망도 낙관하기 어려워서다. 글로벌 PEF들은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안정성이 담보된 자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PEF들도 중형 거래에 쓸 자금이 쌓여 있어 올해 M&A 시장에선 중형급 거래를 발굴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글로벌 PEF들은 미-중 갈등 이후 한국 시장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계엄·탄핵 사태 후 경계심이 고조됐다. 환율 효과만 믿고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작년 에코비트 인수를 검토한 칼라일그룹, KJ환경을 인수한 EQT파트너스처럼 조단위 거래를 꾀하는 곳도 있으나 대부분은 한국 시장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분위기다.
글로벌 PEF들은 투자 후 육성·회수 전략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조단위 기업을 4년 만에 두 배로 만드는 것보다, 3000억원 짜리 기업을 6000억원으로 키우는 게 쉽다는 것이다. 조단위 포트폴리오를 가진 PEF들은 회수에 애를 먹으며 자산을 쪼개팔고 있다. 수천억원대 포트폴리오가 회수에 용이하다.
KKR은 정통 PE 외에 크레딧, 인프라 등 다양한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HD현대마린솔루션처럼 수천억원 규모 소수지분 투자로도 성과를 내온 만큼 거래 규모에 목맬 이유가 없다. TPG는 꾸준히 조단위 거래 참여 제안을 받고 있지만 주로 성과를 낸 것은 녹수(바닥재), 삼화(화장품용기) 등 3000억원 안팎의 거래다.
블랙스톤은 작년말 제이제이툴스(3100억원)를 인수했고, 베인캐피탈은 고려아연에 수천억원 투자하며 충분한 담보와 보장 수익률을 챙겼다. CVC캐피탈은 최근 파마리서치, 스타비젼 등에 각각 2000억~3000억원을 투자했다. 시장 지위가 탄탄하거나 국내외 성장 전망이 밝은 기업들에 주목한 모습이다.
한 글로벌 PEF 관계자는 "조단위 기업은 덩치를 키우기도 힘들거니와 회수 때 원매자를 찾기도 힘들기 때문에 투자하기 부담스럽다"며 "조단위로 예상되는 거래들이 있지만 적극 참여하긴 부담돼 수천억원대 거래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로 말했다.
MBK파트너스나 한앤컴퍼니, IMM PE 등 조단위 거래를 해야 하는 몇몇을 빼면 국내 주요 PEF들도 2000억~5000억원 거래를 선호한다. 수천억 규모 블라인드펀드를 가진 곳들이 크게 무리하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면서 상승 여지가 남은 기업들이 몰려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작년 녹수(4600억원), 비즈니스온(2600억원), 고려노벨화약(2200억원) 등이 PEF에 인수됐다.
국내 PEF들은 올해 대기업발 사업조정 거래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역시 중형급 거래에 관심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SK엔펄스 CMP패드사업(3400억원), 부방그룹 수처리 사업(2600억원) 등이 PEF로 넘어갔다. 작년 추진됐던 SGC그린파워(3200억원)나 물밑에서 진행 중인 현대IFC 매각(3000억원 이상)도 중형 규모다.
국내 PEF들은 쌓아둔 자금도 충분하다. 지난 한 두 해 사이 손에 꼽는 대형사들은 대부분 조단위 자금을 꾸렸는데 아직 드라이파우더가 많다. 이들은 조단위 거래도 하지만 중소형 거래 역시 가리지 않는다. 올해는 중대형 PEF들도 대거 펀드 결성을 본격화하거나 마무리하기 때문에 중형 거래 시장에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PEF와의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M&A 자문사들도 이런 거래를 얼마나 잘 발굴하고 주선하느냐에 따라 올해 성적표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중형급 거래는 자문사 이름값보다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글로벌 투자은행(IB)보다는 회계법인들이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형 회계법인과 법무법인들도 중소형 거래 영역에서 점차 존재감을 키워가는 모습이다.
물론 자문사들의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 창업주나 오너의 마음을 설득하기 위해 무리한 기업가치를 제시하기도 하는데, 파는 쪽은 그보다도 높은 가격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도 제안을 많이 받다 보니 웬만한 조건으론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거래를 선점하기 위해 매각 자문 권한을 받았다며 PEF들에 영업을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국내외 할 것 없이 PEF들은 중형 거래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며 "매각 자문을 따내기 위해 다소 무리한 가격을 받아주겠다 제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매각자들의 시각은 그보다 아득히 높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