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행 티켓 들고 날아오른 한화그룹…남은 고민거리는 뭘까
입력 2025.02.20 07:00
    계열사 주가 신고가 행진 속
    석화·태양광 수익성은 악화
    해외 사업 자금 부담도 커져
    지배구조 개편 비용도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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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금 국내 대기업들을 통틀어 좋다는 소리가 나오는 곳이 한화 말고는 없다. 시장에서 전략적투자자(SI) 플레이어로 뛸 곳도 한화뿐이다." (대형 증권사 임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방산 부문 수혜 기대감이 한화 계열사 주가를 견인하면서 신고가 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미국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전략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지난해와 같은 7위를 지키고 있지만, 6위 롯데그룹과의 자산 격차는 17조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지난해 한화그룹의 주력사업들이 호실적을 기록하면서, 올해는 롯데와 한화의 자리바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방산·항공우주 계열사 주가 급등…신고가 행진에 어닝 서프라이즈까지

      한화그룹의 방산·항공우주 계열사들은 최근 증시에서 가파른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달 들어 한화시스템은 주당 3만5000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60만원선을 각각 돌파하며 상장 이래 역대 최고가를 갱신했다. 한화오션도 8만원에 육박하며 1년 사이 주가가 4배가량 뛰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4년 4분기 매출이 4조8311억원으로 전년 대비 56%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8925억원으로 222% 급증했다. 특히 지상방산 부문의 성장세가 두드러져 4분기 매출 3조3647억원, 영업이익 8698억원을 기록했다.

      '키맨'들의 역할도 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총괄 전략실의 정서영 전무는 에이치솔루션(現 한화에너지) 합병,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은 대우조선해양(現 한화오션) 거점인 거제 옥포조선소 합병 작업을 각각 이끌었다. 그룹 내부에서는 이들의 역할이 이번 밸류 상승에 결정적 기반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의 실적이 본격 반영되고, 미 해군 함정 건조 및 MRO 사업이 확대되면서 추가 성장도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에어로-솔루션 매출 편중 심화…금융·태양광은 부진

      한화그룹 성장의 이면에는 매출 편중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한화의 올해 4분기 연결기준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6.8%, 한화솔루션이 25.8%로 두 계열사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이끄는 금융 부문(41.8%)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내수 시장 성장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해외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해외 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 수요가 늘어나면서 금융계열사들의 체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방산·에너지를, 삼남 김동선 부사장이 유통·서비스를 주도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과 달리, 차남 김동원 사장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금융 부문을 맡고 있어 가시적인 성과 창출에 제약이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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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침체기를 맞은 석유화학과 야심차게 시작한 태양광 사업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주력 석유화학 계열사인 한화토탈에너지스의 신용등급을 최근 하향조정했다. 이에 따라 한화토탈에너지스의 최대주주인 한화임팩트의 기업어음 및 전자단기사채 신용등급도 A1에서 A2+로 하향 조정됐다. 

      태양광 사업도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와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한화솔루션의 큐셀 부문은 지난해 적자 전환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비(非)중국계 기업들이 수혜를 볼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미국 현지에 태양광 밸류체인을 구성하는 데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한 자문사 관계자는 "태양광 시장은 미국 IRA 혜택을 노린 기업들로 인해 과열된 상태"라며 "FI(재무적 투자자)로 들어온 금융기관들도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적은 사업들을 청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현안은 김동선 한화호텔앤리조트 부사장이 이끄는 한화비전의 생산기지 리스크 관리다. 시큐리티 제품의 90% 이상을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있어,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에 따른 관세 부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3남 체제 지배구조 개편 코앞…주가 급등이 변수될까

      최근 한화그룹의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지배구조 개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달 한화오션 지분 7.3%를 1조3000억원에 추가 취득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방산·항공우주·조선 사업을 김동관 부회장의 한 축으로 통합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김동관 부회장이 통합하려는 계열사들의 주가가 최근 모두 고점을 향해 달리고 있어 추가 지분 확보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반면 김동원 사장의 금융 계열사나 김동선 부사장의 유통·서비스 계열사들은 상대적으로 주가가 낮아 구조조정에 유리한 상황이다.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금도 부담이다. 이번 한화오션 지분 매입에만 조 단위 자금이 투입됐다. 향후 지주회사 전환이나 추가적인 지분 매입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이 소요될 수 있다. 지분 매각 과정에서 주가가 떨어질 경우 소액주주들의 반발 가능성도 있어, 시장친화적인 방식의 구조 개편이 요구된다는 평가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통상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나 승계 작업은 계열사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을 때 유리하다"며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추가적인 지분 확보나 구조조정에 더 많은 비용이 들 수 있어, 한화그룹의 지배구조 재편 시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