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친환경 털어내는 SK그룹…수업료는 누가 어디까지 지불할까
입력 2025.02.24 07:00
    취재노트
    SK㈜ 140조 가치 근거이던 친환경 사업, 4년 만에 정리 수순
    성과 기약 없고 비용부담만…논카본 신사업 줄줄이 매각行
    ESG 압박 속 불가피한 수업료라기엔…결국 전략의 실패 평가
    다가올 청구서로 수업료 드러날 전망…주주도 부담 주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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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이 4대 핵심 먹거리 중 하나로 내세웠던 그린(Green) 사업에서 발을 빼는 모양새다. 4년 전만 해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트렌드를 가장 세련되게 체화하는 대기업으로 주목받았으나 들인 돈 대비 성과는 부진한 탓에 줄줄이 정리에 들어갔다.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기엔 남은 청구서 부담이 만만치 않다. 수업료를 어디까지 지불하게 될지도 지켜봐야 한다.

      4년 전인 2021년 3월, SK㈜는 투자자 설명회(IR)를 열고 '전문가치투자자'로서 시가총액 140조원을 목표로 기업 가치를 제고하겠다고 발표했다. 2020년 연말 주당 24만원이던 SK㈜ 주가를 2025년 200만원까지 끌어올린다며 구체적인 기한과 액수까지 제시했다. 16일 종가 기준 SK㈜ 주가는 14만7600원, 시가총액은 약 10조7000억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당시 SK㈜는 수소 밸류체인과 환경 솔루션 등 그린 부문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논카본(친환경) 신사업의 성장성을 특히 강조했다. SK온과 SK IET, SK지오센트릭, SK넥실리스, SK에코플랜트, SK E&S까지 그룹 계열사 전반을 ESG 트렌드의 선봉에 세워 높은 몸값을 인정받겠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SK㈜ 아래에는 담당 투자센터를 두고 성과를 내면 계열사 사장으로 파격 승진하는 사례도 이어졌다. 

      지금 SK그룹에서 쏟아지는 사업부 매각설은 이 같은 작업에 대한 뒷수습으로 비친다. 누구보다 친환경에 진심이던 기업이 친환경 꼬리표를 떼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IR에 참석했던 한 기관투자가는 "당시 기존 사업을 매각하고 성공 사례가 없는 친환경 신사업을 확장하는 데 우려를 표하자 SK㈜는 "오히려 현금유입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답변했다. 결국 우려대로 됐다"이라며 "생각만큼 부가가치도 높지 않고 오히려 이자나 영업권 상각으로 인한 비용 부담이 더 큰 구조라 그룹도 매각을 서두르라고 재촉할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사실상 파이낸셜 스토리의 실패를 자인한 것이란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논카본 투자 의지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그린투자센터는 지난해 그린 태스크포스(TF)로 대체돼 구조조정 작업을 조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 아니라면 매각해서 유동성을 확보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만큼 논카본 전환을 대표하던 신사업들이 줄지어 매물로 등장하게 됐기 때문이다. 

      SK에코플랜트가 폐플라스틱 재활용 원료 생산 자회사를 매각한 데 이어 최근 폐기물 사업 통매각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SK지오센트릭의 폐플라스틱 재활용 공장 건설도 무기한 연기됐다. 수소사업추진단의 주축이던 SK E&S는 SK이노베이션에 합병되며 액화천연가스(LNG) 밸류체인을 담당하게 됐다. 그룹의 최대 미래 먹거리로 꼽힌 SK온은 배터리 셀 사업은 적자를 벗어날 수 있는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게 됐다. 2차전지 수직계열화가 리스크만 키운다는 분석 이후로 분리막과 동박을 담당하던 SK IET, SK넥실리스는 상시 잠재 매물로 오르내린다. 

      투자은행(IB)과 법무·회계법인에서 SK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인수합병(M&A)과 신사업 기획을 지원하던 인력들도 부회장단에 이어 작년부터 이탈이 본격화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한때는 수뇌부가 원하는 사업을 적기 확보하는 전문 인력으로 대우받았지만 사업적 성과가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다. 올 들어선 ESG 전담 조직도 축소·통폐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대약진운동의 '저 새는 나쁜 새다' 수준으로 카본(화석연료) 사업을 죄악시하고 논카본으로 무게추를 옯겼는데, 지금 현금흐름이 나오는 사업은 기존 카본 사업들"이라며 "수뇌부 지시대로 M&A를 수행했더니 이제는 매각 성과를 빨리 내지 못한다고 추궁당하고 자리를 비우게 된 임직원들의 불만도 자주 접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SK그룹이 불가피하게 수업료를 지불했을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4년 전만 해도 글로벌 ESG 트렌드가 이렇게 빨리 저물 줄 몰랐다. 글로벌 큰손들이 탄소배출량 감축 계획이나 ESG 전략을 마련하지 않는 기업들에 주주서한을 보내며 압박을 가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화 불가능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긴 대가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조정하건 이 과정에서 규제 환경이나 시장 수요, 경기변동 등 불확실성에 대처하고 현금흐름을 관리하는 건 결국 기업의 몫인 탓이다. 

      ESG 트렌드에 대한 몰이해를 꼬집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당시 친환경 꼬리표를 단 사업들은 투자금이 몰리며 단기간에 몸값이 수십배 부풀어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2021년 IR 과정에서도 정유·석유화학의 멀티플(기업가치 배수)은 0.9배에 불과하지만 수소는 18배에 달한다는 문구가 버젓이 달려 있었다. 특정 산업에 대한 시장 평가가 수시로 변한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그룹 내에 더 비싼 포트폴리오를 덧붙이려고 ESG 전략을 내세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컨설팅펌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마케팅 목적으로 남발한 ESG는 실제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논의와 거리가 있다"라며 "공시나 재무제표 관리 기준을 보다 투명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강화하는 게 주요 골자인데, 누가 더 친환경 기업인지 홍보하고 더 비싼 멀티플(배수)을 적용받는 게임으로 변질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환경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SK그룹이 지불한 수업료가 속속 드러날 전망이다. 기존 주력 사업의 지분을 매각하고 우선주, 메자닌 등을 발행하며 시장 자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온 만큼 이미 여러 형태로 청구서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예정된 매각이나 기업공개(IPO) 작업의 성과가 시원찮으면 수업료를 지불하게 될 주체도 계속 늘어날 수 있다. 이미 지난해에 계열 간 합병 작업을 거치며 일부 수업료를 주주나 투자자들이 부담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