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사업 매각보단 유동성 확보에 집중 평가
부동산·호텔 매각 집중…회사채·CP 등 외부차입 늘려
"핵심 지켜 경쟁력 강화" 롯데 전략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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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이 사업구조 재편보다 부동산 매각 등 재무구조 개선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각 계열사의 구조조정 대상 사업부는 매각이 추진됐지만, 가격 불일치로 협상이 중단된 상태다. 반면 비핵심 소규모 자산 및 부동산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여념이 없다. 최소한의 지출로 사실상 버티기 전략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강도 높은 쇄신으로 핵심사업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사업구조 개편과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을 것임을 천명했다. 롯데렌탈 매각이라는 깜짝 '딜'도 있었지만 현 시점에선 사업구조 개편은 전반적으로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롯데캐피탈을 비롯한 롯데케미칼 건자재사업부, 롯데웰푸드 제빵사업부 등의 매각 협상은 롯데그룹과 원매자측의 가격 간극으로 인해 대부분 교착상태에 빠졌다. 롯데그룹 측은 공식적으로 각 사업 매각을 부인하고 있으나, 주요 사모펀드(PEF)들과 비공식 접촉을 통해 거래를 모색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작업을 주도하는 노준형 롯데지주 경영혁신실장 사장과 정경운 투자전략팀 상무 등은 다각도로 매수자를 물색했으나, 시장에서는 가격 인식 차이로 대부분의 협상이 진전되지 못했다. 롯데그룹이 제시한 매물 가격이 원매자들의 눈높이를 크게 벗어나면서 거래 성사 가능성은 요원해졌다.
롯데그룹은 1조원대 기업가치를 목표로 호텔롯데(32.59%) 등의 롯데캐피탈 지분 매각을 검토했으나, 잠재 매수자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8000억~1조원 가치가 거론된 롯데케미칼 건자재사업부, 롯데 측에서 2000억원 규모를 요구한 롯데웰푸드 제빵사업부도 비슷한 상황이다. 롯데가 내건 가격과 원매자들의 적정가 간 시각차가 최대 10배까지 벌어지며 일부 협상이 결렬됐다.
현재까지 그룹이 진행한 주요 매각 건은 그전부터 유동화를 시도했던 롯데케미칼 해외법인을 제외하면 세븐일레븐 운영사 코리아세븐의 ATM사업부(600억원), 롯데렌탈 경영권 지분 56.2%(1조5700억원) 정도다. 이달만 세 건의 거래가 진행되며 속도를 내고 있지만, M&A 시장에선 '메인 이벤트'로 기대했던 대형 사업부 매각이 이뤄지지 않자 "좋은 건 다 안 판다"는 기조가 자리잡았다.
PEF 관계자들 사이에선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롯데렌탈을 인수한 이래로 롯데가 '부르면 값'이라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 같다", "부동산 전문 운용사들만 좋은 일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만큼 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유동성에 큰 문제가 있다면 어떤 사업부라도 일단 가격을 다운시키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무리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은 '핵심-비핵심' 사업 구분을 통한 선별적 구조조정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롯데정밀화학이나 첨단소재사업부(롯데케미칼), 주류사업부(롯데칠성) 등 우량 자산과 핵심 사업은 매각 대상에서 제외하고, 비핵심으로 분류된 자산만 처분한다는 원칙이다.
일례로 롯데케미칼은 현재 60%인 기초소재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하로 줄이고, 고부가 스페셜티 비중을 7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첨단소재사업부나 롯데정밀화학의 역할이 큰 만큼 매각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롯데지주 측은 "비핵심 자산을 매각해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해외 시장 진출 확대 및 미래 먹거리를 개척한다는 전략"이라며 "시장에서 관심을 보이는 몇몇 사업부는 처음부터 매각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부 PEF들이 핵심 계열사 매각 문의가 이어지자, 롯데그룹 M&A 담당 임원들도 '차 떼고 포 떼면 어떻게 장기를 두겠느냐'는 식의 불편함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업구조 개편은 단기간 내 해결하기 쉽지 않고 업황의 턴어라운드 기대감도 쉽게 버릴 수 없다. 이렇다보니 부동산 등 유휴자산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이 상대적으로 현실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핵심 사업은 유지하면서 비핵심 자산만 선별적으로 매각하되, 적정 가격이 형성될 때까지는 금융권 지원을 통해 버티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부동산 매각에 집중하고 있다. 롯데웰푸드의 증평공장(200억원)을 시작으로 롯데물산의 경기권 물류센터, 롯데쇼핑의 롯데백화점 부산센텀시티점, 호텔롯데의 L7 호텔 등이 매각 대상에 올랐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2000억원대, L7 홍대 호텔은 2500억원 규모로 매각을 추진 중이다. 호텔롯데는 부동산 매입 없는 위탁운영 방식을 전면 도입하는 등 '에셋 라이트'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서초구 잠원동 본사 사옥 부지의 매각을 공식화했다. 롯데건설은 부동산 등을 비롯해 현재 1조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을 활용한 유동성 확보는 자본시장에서의 조달 여력을 높일 수 있다. 롯데웰푸드와 롯데칠성음료는 올해 초 공모채 시장에서 자금을 수월하게 조달했고, 호텔롯데는 이달 진행된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목표액의 9배가 넘는 자금을 모았다. 롯데건설은 단기사채 발행 한도를 500억원에서 2500억원으로 5배 늘리고, 롯데지주의 기업어음(CP) 발행 잔액이 2조2600억원에 달하는 단기자금 시장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국내 금융지주들은 롯데그룹의 조달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대출과 채권 인수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롯데그룹의 자산 재평가와 비주력 사업 매각 시도는 그룹 차원의 단기 현금 확보와 시간 벌기에 의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만 그룹 입장에선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바이오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여력 확보와 롯데케미칼의 고도화 작업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신 회장이 언급한 사업구조 재편과 재무구조 개선의 키를 들고 있는 사업들로 근원적인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지금의 부동산 활용을 통한 유동성 확보도 언제든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자문사 고위 관계자는 "시장에서 딜이 쏟아질 것 같던 롯데케미칼도 M&A 시장에서 금융권의 지원을 기대하며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워 아쉬움이 크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에서는 "시장의 일부 평가와는 달리 롯데그룹의 사업재편은 사전에 계획한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